김형원 사회부 기자
김형원 사회부 기자

민주노동당 부대변인을 지낸 황선(42)씨가 전국 순회 토크 콘서트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북한 정권을 찬양하고 북한 사회를 미화했다는 조선일보 보도에 수백건씩 댓글이 달렸다. 분노의 댓글이 대부분이다. '그런 좋은 사회에서 왜 지금도 목숨을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느냐' '북한이 그렇게 좋다면 왜 그곳에 가서 살지 않느냐'는 것이다. 황씨의 발언을 보면 그런 질문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할 정도다. 그는 북한을 인권·복지·안전·IT·환경 각 분야가 고루 발전한 사회로 그렸다.

황씨는 2005년 10월 10일 평양에서 제왕절개로 딸을 낳았다. 그날은 조선노동당 창당 60주년 기념일이었다. 황씨는 "한국은 3개월인데 북한은 일찍이 150일 동안이 출산 휴가로 보장돼 있어서 깜짝 놀랐다"고도 했다. 황씨는 그러나 딸과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

이들의 이중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물들이 있다. "(나에 대해) 종북 운운하는데 종미(從美)가 훨씬 더 문제"라고 했던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그중 한 명이다. 이 의원은 내란 선동 혐의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아들을 미국에 유학 보낸 사실이 드러났다. 서울 마포구 오피스텔에서 압수된 그의 '아이패드'에 부자간의 대화가 남아 있었다. "아빠 미국에 언제 올 거야?" "아빠 돈 보내줘!" 미(美) 유학파 아들의 물음에 한국 사회를 '종미'라고 비판했던 아버지 이 의원의 답은 "500불 부쳤다"는 것이었다.

"왜 북한에서 살지 않는가"라는 질문을 받은 또 다른 인물이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다. 그는 2001년 김일성 생가인 만경대 방명록에 '만경대 정신 이어받아 통일 위업 이룩하자'는 글을 남긴 한국 사회 대표적인 반미(反美)운동가다. 그런 강 전 교수의 일가(一家)는 뜻밖에 모두 '미국물'을 먹었다. 강 전 교수는 먼저 유학 길에 오른 부인을 좇아 미국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5년 교수 안식년도 미국에서 보냈다. 그의 장남은 과거 미국 로펌에 취업했고, 차남은 주한미군 배속 한국 군인(카투사)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한국의 주적(主敵)은 북한이 아니라 미국"이라고 했던 강 전 교수와 그 가족의 행로를 보면 보통 사람들로서는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다.

황선·이석기·강정구 같은 북한 찬양론자들이 북한에 망명 신청을 했다는 소리를 아직 들어본 적이 없다. 물론 황씨 같은 부류가 설령 거주 의사를 밝히더라도 북한 정권이 받아줄지는 미지수다. 세계 111개국이 북한 정권을 범죄 집단으로 규정한 마당에 황씨처럼 훌륭한 '외교관'을 따로 구할 수 있겠는가. 그들을 품어 안는 순간 고성능 대외(對外) '확성기'는 사라지고 밥값만 축내는 '부양 인구'만 남는다는 것을 북한의 집권층이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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