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잠재적 핵 공격 대상국 명단을 담은 미국 국방부의 비밀 보고서 내용이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9일 특종에 이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신문들에 10일 일제히 보도되면서 미국 안팎에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 주요 내용
미국 국방부가 지난 1월 의회에 제출한 ‘핵 태세 검토’라는 제목의 이 보고서는 과거 행정부의 핵무기 정책과 크게 두가지 점에서 다르다.

우선 잠재적 핵 공격 목표의 비중을 러시아에서부터 북한과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 등 미국의 테러리스트 지원국 명단에 올라 있는 5개국과 중국으로 이동시켰다.

미국의 ‘핵 태세 검토’ 보고서는 1981년 레이건 행정부가 재정립한 데 이어, 1997년 클린턴 행정부가 변경하는 등 지난 20년 동안 두차례 바뀌었다. 레이건 행정부는 러시아와의 ‘핵 대결 우위’를 지향했고, 클린턴 행정부는 ‘위협용 억지력으로서의 핵 군사력’을 강조했었다.

부시 행정부는 그러나 이 보고서에서 “북한과 이라크, 이란, 시리아, 리비아는 가까운 장래에 잠재적이거나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생길 수 있는 나라들”이라며 “이 국가들은 모두 미국과 미국의 안보동맹국들에 대해 오랜기간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 잠재적인 핵 공격 대상국으로 거론했다. 보고서는 “북한과 이라크는 특히 미군의 만성적인 우려 대상이 돼왔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대만과의 분쟁시 중국에 대한 핵 공격 가능성을 강조한 반면, 미국을 제외한 최대 핵무기 보유국인 러시아에 대해서는 과거보다 훨씬 그 비중을 낮추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미국 국방부는 이 보고서에서 생·화학무기 저장고와 같은 깊은 지하 시설과 요새를 공격하기 위한 소규모의 차세대 핵무기 개발 필요성과 함께 이를 위한 핵실험 재개를 권고하고 있어, 주목된다.

◆ 논란 확산
뉴욕타임스는 10일 미국 국방부의 이 보고서 내용이 외교적 부작용을 일으켜 당장 10일부터 시작된 딕 체니(Cheney) 부통령의 유럽·중동 순방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유럽 국가들은 군축의 관점에서, 중동국가들은 자신의 인근국가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 때문에, 탐탁치 않게 여길 것이라는 분석이다.

미국내의 군축전문가들은 부시 행정부가 비핵국가에 대해, 이들이 핵보유국가와 연대해 미국을 공격하거나 생화학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한 미국도 핵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소극적 보장(negative assuarance)’ 정책을 사실상 폐기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북한은 1~2개의 핵무기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란,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는 핵무기가 아직 없다.

또 지하관통용 핵무기의 개발은 지금까지 억지력에 머물렀던 핵무기의 사용가능성을 현실화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비판론도 제기되고 있다. 핵무기 전문가인 로버트 노리스(Norris)는 “핵무기를 현재의 6000기 수준에서 1700~2200개 수준으로 감축하겠다는 부시 행정부의 발표는 도로아미타불이나 마찬가지가 됐다”고 말했다.

반면 헤리티지 재단의 잭 스펜서(Spencer)는 “미국은 국제테러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는 국가들에 대해 믿을 만한 억지력을 가질 필요가 있다”면서 “보고서의 내용은 탈냉전시대의 바람직한 핵개발 내용”이라고 옹호했다.
/ 워싱턴=朱庸中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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