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은 간첩 사건 제보자의 신분이 담긴 국가정보원 수사 기록을 SBS '그것이 알고 싶다' 담당 프로듀서(PD)에게 건넨 혐의로 민변(民辯) 소속 변호사 2명과 PD를 수사 중이다. SBS는 올 7월 방송에서 북한 여간첩 이모씨 사건을 다루면서 이씨가 국정원 집중 조사를 받은 끝에 간첩이라고 거짓 자백했을 수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SBS는 이 방송에서 이씨 사건 제보자인 탈북자 최모씨 실명(實名)이 담긴 국정원 수사 기록을 그대로 공개했다. 이에 최씨는 신분 노출로 신변 위협을 느끼고 있다며 이씨 변호인인 민변 소속 변호사와 방송 PD를 고소했다.

이씨는 작년 2월 북한 보위사령부로부터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국내에 들어왔다. 이씨는 수사 과정에서 간첩임을 자백했고 국선(國選)변호인이 변론을 맡은 1·2심에서도 혐의를 인정해 올 4월 2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씨는 민변 변호사들이 맡은 대법원 재판 때는 국정원이 사건을 조작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지난 10월 이씨에게 징역 3년 판결을 확정했다.

일반 강력 범죄에서도 수사기관이나 판사·변호사는 제보자의 신원을 비밀로 해야 한다. 보복을 막기 위해서다. 간첩 제보자라면 그 신분을 더 철저히 보호해 줘야 마땅하다. SBS가 제보자의 실명을 공개한 것은 북한에 보복하라고 알려준 것이나 똑같다. 이걸 보고 누가 간첩 신고를 하려 하겠는가. 더 큰 문제는 수사 기록을 SBS에 내준 사람들이다. 이씨 변호인들이 최씨에 관한 기록을 유출한 게 사실이라면 변호인으로서 직업윤리를 어긴 것은 물론 증거 서류를 외부에 유출하지 못하게 금지한 형사소송법을 대놓고 깔아뭉갠 행위다.

검찰은 일부 민변 변호사들이 간첩 혐의자들에게 묵비권(默袐權)을 종용하고 허위 진술을 유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최근 이런 혐의로 민변 변호사 2명에 대한 징계를 대한변협에 신청하기도 했다. 이번에 간첩 제보자 신원을 SBS에 유출한 혐의로 고소당한 변호사 2명 중 한 명도 징계 신청 변호사에 포함돼 있다. 수사 당국은 변호사들의 간첩 제보자 정보 누설 혐의를 철저히 조사해 그 결과를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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