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미봉남(通美封南). 북한의 외교 전략으로 미국과 통하고 남한을 봉쇄한다는 의미다. 통미봉남은 무력충돌 위기감이 감돌았던 1990년대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과 북한이 제네바 합의를 도출할 때 소외됐던 우리 정부가 경수로 비용만 떠안아야 했던 것에서 유래했다.

북한이 최근 미국인 억류자들을 전격 석방하면서 이른바 통미봉남 카드를 다시 꺼내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북한 당국이 남북 관계가 개선돼야 북·미 관계나 북·일 관계도 진전이 있을 것으로 보고 남한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대북 전단 문제로 벽에 막히자 조기에 미국인들을 석방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인 인질들을 석방했다는 사실 하나만 놓고 북한이 통미봉남 전술을 또다시 구사했다고 단정하기는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북한이 1990년대 이후 통미봉남을 실행에 옮긴 적이 없으므로 북한이 이 전략을 내세울지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기우일 수 있다.

그러나 통미봉남이 현실화된다고 가정했을 때 그 파급력을 무시할 수 없어서 우리로서는 최소한 대책을 세울 필요가 없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핵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비핵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북·미 관계 개선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받았지만 그가 북한 최고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제1 비서에게 친서를 전달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북·미 관계 해빙기가 올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그것은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우방도 없고 영원한 적도 없으며 오로지 우리의 국익만 있을 뿐이다"라는 19세기 영국 정치가 헨리 파머스턴 경의 명언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통미봉남의 재현을 막기 위해서는 대북 전단으로 긴장 관계로 되돌아간 경색 국면을 대화를 통해 풀어갈 필요가 있다.

북한이 제17회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때 대표단 파견을 제안했고 실세 3인방인 황병서·최룡해·김양건이 인천을 찾아 우리 정부 고위 인사와 대화를 시도한 것은 북한이 대화 의지가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북한이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 이후 서해 NLL 상에서 도발을 하고 연천 지역에서는 대북 전단을 실은 풍선을 향해 고사총을 발사하기도 했지만,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 의지를 접었다고 판단하기는 이르다.

탈북자 위주로 구성된 민간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를 무력으로 차단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정부의 주장이 분명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공감했듯이 민간단체들도 계속된 대북 전단 살포를 자제할 필요가 있으며 국력에서 큰 차이가 나는 우리가 마음을 열고 역으로 북한에 먼저 대화를 요구할 수도 있다.

한·미 관계가 굳건한 지금 북한이 통미봉남 전략을 다시 들고 나오더라도 그 전략이 통하지도 않겠지만, 행여나 한반도 문제에 우리가 배제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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