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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00대 여성'에 뽑히고 英의회에서 연설한 탈북 여대생 박연미는 누구?
조선  |  @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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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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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연미씨/프리덤팩토리 제공
탈북 여대생 박연미(21)씨가 영국 BBC가 선정한 ‘올해의 세계 100대 여성’에 선정됐다. 한국인으로는 박씨가 유일하게 명단에 포함됐다. BBC는 박씨를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난을 알리는 사회 활동가(activist)라고 소개했다. 스코틀랜드 자치정부를 이끌게 될 니콜라 스털전과 온라인 여성단체 ‘에브리데이 섹시즘 프로젝트’의 설립자 로라 베이츠 등이 박씨와 함께 100인으로 선정됐다.

박씨는 나이는 어리지만, 국제 사회에서의 인지도를 급속도로 키워가고 있다. 지난 29일(현지 시각)에는 영국 웨스트민스트 의회에서 열린 ‘북한의 과거와 현재’를 주제로 한 공청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유창한 영어로 “시장 경제를 체험한 세대들이 성장하고 있어 북한도 밑바닥부터 변화하고 있다”는 내용의 연설을 했다.

박씨는 11월엔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 등에서 북한 인권의 실상을 전하는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나는 장마당 세대, 북한도 변하고 있다

박연미씨가 처음 국제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5월 미국 워싱턴포스트지(紙)에 ‘북한 장마당 세대의 희망(The hopes of North Korea’s Black Market Generation)’이라는 제목의 본인 글이 실리면서부터다.

장마당 세대란 1990년 이후에 출생한 세대를 일컫는 말로, 이들은 국가 배급망이 붕괴한 이후에 태어나 국가의 혜택을 거의 받지 못했다. 박씨는 글에서 장마당 세대의 특징을 ‘김씨 정권에 대한 충성심이 없으며(has no devotion to the Kim dynasty)’, ‘미디어와 정보를 많이 접했고(wide access to outside media and information)’, ‘자본주의에 친숙하다(capitalistic)’라고 정의했다.

지난달에는 아일랜드서 열린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 한복을 입고 연설자로 나섰다. 이 자리서 그는 영어 연설을 하면서 탈북 과정에서 어머니가 중국인 브로커에게 성폭행당하는 장면을 눈으로 뻔히 보면서도 숨만 죽이고 있었다고 말해 시청자들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었다. 아울러 중국 당국이 탈북자 강제북송 정책을 중단하도록 힘써달라고 눈물로 호소해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았다.

현재는 북한 실상을 영어로 알리는 팟캐스트 방송 ‘케이시 앤드 연미 쇼’를 진행하고 있다. ‘김정은과 북핵’에만 초점을 맞춰 북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 북한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알리는 것이 통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이런 방송을 하기로 생각했다고 한다. 박씨는 이런 일을 자유롭게 하고 있는 것이 꿈만 같다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

13살에 북한 탈출, 영어 배우려 ‘미드’ 20번 돌려봐

올해 21살인 박연미씨는 북한 양강도 혜산 출신이다. 13살이던 지난 2007년 가족과 함께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 고비사막과 몽골 등을 거쳐 2009년 정착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탈북 과정에서 아버지를 장암으로 여의었고 어머니는 중국 브로커에게 성폭행을 당하는 아픔도 겪었다.

그는 지난 5월 한 언론 인터뷰서 “공포 정치 때문에 불만을 표출하지 못하는 것 뿐이지, 사람들이 모여 앉기만 하면 김씨 정권을 욕한다”며 “끝나지 않을 독재정권이 곧 무너지는 날이 점점 당겨지고 있음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고 했다.

현재 박씨는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이 전공을 택한 이유를 “부끄럽기도 슬프기도 하지만, 중국에서 경찰복을 입은 사람들이 너무 무서웠다”며 “그런 경찰이 되면 한국에서 가족을 잘 지킬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한적이 있다.

박씨의 아버지는 북한에서 당원이었다. 시 인민위원회 지도원으로 일했는데, 2000년 경제개혁조치 이후에는 기업소에서 일했다고 한다. 기업소에서는 수익금을 일정 이상 올리면 밖에 나가 장사를 할 수 있게 했는데, 박씨의 아버지도 수익금만 채워놓은 채 밖에서 장사를 했다고 한다. 박씨에 따르면 아버지가 신분상 꽤 고위직이었음에도 월급으로는 쌀 1㎏도 살 수 없어, 불법으로 장사를 하지 않았다면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였다.

그는 지난 2009년 한국에 정착하고 나서는, 북한의 실상을 세상에 제대로 알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현재의 북한이 아닌 완전히 바뀐 모습의 북한에 가는 것이 소망이라고 한다.

박씨는 북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해 영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지난 2009년엔 알파벳만 아는 수준이었지만, 탈북자들에게 영어 교육을 하는 미국인 케이시 라티그를 만난 이후 꾸준히 공부해 지금은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한다.

당시 박씨는 미국 드라마인 ‘프렌즈’의 전회를 20번씩 반복해 보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루에 9시간 씩 영어를 공부했다. 케이시는 박연미씨 외에도 117명의 탈북자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박씨는 그 중에서도 가장 성실한 학생이었다고 한다. 박씨는 이후 미국과 코스타리카로 자원 봉사활동도 다녀왔다.

박씨는 11월에는 미국으로 떠날 예정이다. 그곳에서 메사추세츠 스미스 칼리지와 하버드 대학교, 조지타운 대학교에서 각각 북한의 실상을 전하는 강연을 할 예정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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