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6자회담 특사 "북한과의 대화에 전제조건 없다" 파격 발언
한미 간 사전조율 없어...北 억류자 석방에 북미 간 '딜' 가능성 낮아

지난달30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찾은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좌측은 시드니 사일러 6자회담 특사. 2014.9.30/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지난달30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를 찾은 글린 데이비스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 좌측은 시드니 사일러 6자회담 특사. 2014.9.30/뉴스1 © News1 양동욱 기자
북한의 전격적 미국인 억류자 석방 이후 미국 6자회담 특사가 대화의 전제조건이 없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이 알려지며, 북미 간 모종의 시그널을 주고 받고 있는 게 아니냐는 시각이 제기된다.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지만 미국 억류자 석방 건을 미국의 대북정책 변화로 연결해서 판단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우리 정부 당국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이와 관련 시드니 사일러 신임 6자회담 특사는 21일(현지시간) 워싱턴DC 카네기평화연구원에서 열린 제네바 합의 20주년 기념 세미나에서 "핵물리학자인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가 지적한대로 '더이상 핵폭탄을 만들지 않고(no more bombs), 핵폭탄을 실험하지 않으며(no testing), 핵폭탄과 관련 기술 등을 수출하지 않는(no export)' 것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은 여전히 (북한과의 대화에) 유연하다"며 "우리는 대화 자체나 의제에 전제조건을 두지 않으며 북한의 요구사항과 불만에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정부는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최근까지 2012년 무산된 '2·29 북미합의+알파'를 내세워 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일러 특사의 발언에 담긴 북핵대화 재개의 조건은 기본적으로 2·29합의의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러나 "대화 자체나 전제조건을 두지 않는다"는 식의 발언은 북한의 선제적 조치가 없으면 대화재개도 없다는 기존 태도와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된다. 일단 북한과 대화를 먼저 시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발언은 북한이 이날 미국인 억류자 3명 중 한명인 제프리 파울씨를 전격 석방한 것과 맞물려 더욱 주목된다.

북미 간 북핵문제와 관련한 일정한 거래 과정에서 억류자가 석방된 것이 아니냐는 시각에서다.

정부는 일단 이같은 관측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22일 뉴스1과의 통화에서 "사일러 특사의 발언과 억류자 석방이 시기적으로 맞물려 있긴 하지만, 파울씨의 석방을 하나의 시그널로 이해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북미관계를 움직이려면, 북핵문제에 있어서의 진전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그러한 진전된 측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게 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핵문제와 관련한 가시적 움직임을 염두에 둔 한미 간 사전조율도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국자는 "미국의 북핵 정책 변화가 있으려면, 당연히 한국과 이야기가 이미 돼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며 북핵정책 변화 가능성과 관련한 한미 간 의미를 둘만한 사전 대화가 없었음을 시사했다.

사일러 의 발언과 북한의 미국인 억류자 석방 건이 말하자면 '까마귀 날자 배떨어진 격'이란 뜻이다.

사일러의 발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북한의 미국인 억류자 석방 건의 경우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미국에게 받은 것 없이 선물을 안긴 꼴이기 때문이다.

다만 여전히 2명의 미국인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점에서 북한 입장에선 억류자 문제에 대한 미국의 관심을 재차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으로 볼 필요도 있다.

북한 입장에선 세 명의 억류자 가운데 가장 관심도가 낮은 사람을 풀어주고, 미국과의 인질협상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란 분석에서다.

다른 정부 관계자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음에도 억류자를 풀어줬다기 보다, 얻어내기 위해서 한 명을 먼저 풀어 준 것으로 이해하는 게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 경우 북한이 다른 2명의 억류자의 경우 쉽게 석방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미측에 전달한 것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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