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13일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2차 회의에서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 한반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대화가 지속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10월 말 또는 11월 초로 예상되는 남북 고위급 접촉에 대해 "남북 관계 개선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지금 핫이슈인 5·24 (대북 제재) 문제 등도 남북한 당국이 만나서 책임 있는 자세로 진정성 있는 대화를 나누어 풀어나가야 한다"고 했다. 북이 천안함을 공격해 취해진 5·24 제재를 남북대화와 병행해서 해결해 나가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또 "남북 관계는 늘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왔다"며 "섣부른 판단으로 남북 관계의 환경을 바꾸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도발에는 단호히 대처해나가되 대화의 문은 항상 열어놓고 평화 정착을 위해 노력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당초 12월에 열 예정이던 통일준비위 2차 전체회의를 두 달 앞당겨 개최해 최근 어렵게 만들어진 남북대화 국면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북한은 지난 4일 황병서 군총정치국장 등을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보내 남북 고위급 대화를 여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남북대화 합의 후 사흘 만에 북한 경비정이 서해 NLL을 침범해 서로 사격을 주고받는 일이 벌어졌고 지난 10일엔 우리 측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풍선을 겨냥했다면서 대공 기관총 사격을 가하기도 했다. 북의 이런 일련의 행동은 모두 사전에 준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잇단 극적 행동으로 마치 우리 민간단체의 대북전단과 NLL이 남북대화를 어렵게 만드는 듯한 착시 현상을 만들려는 것이다. 앞으로 북은 남북대화에서도 대북전단과 NLL 문제를 집중적으로 들고 나오면서 5·24 조치 해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요구할 것이다. 북한 실세들이 다녀간 직후 야당은 물론 여당 일부에서도 5·24 제재를 해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북의 전략은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북한이 천안함 폭침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5·24 조치를 해제할 수 있다고 해왔다. 북이 다시는 관광객을 소총으로 살해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조치를 취해야 금강산 관광을 재개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남북대화를 통해 천안함 폭침 문제를 해결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 방식으로 천안함 문제가 해결되기를 모두가 바란다.

그러나 북이 이를 남측의 우선순위 변경이나 입장 후퇴로 읽을 가능성도 있다. 앞으로 북은 남북대화 과정에서 남측이 천안함 폭침 문제를 제기하면 대화를 깰 것처럼 나올 것이다. 그렇게 해서 천안함 폭침과 46명의 희생을 아웅산 테러나 KAL기 폭파처럼 '지난 일'로 만들려는 것이 북의 전략이라면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북한과 대화·협상은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나가야 한다. 그러나 원칙 없는 대화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키운다는 것이 40여년간의 남북대화가 남긴 교훈이란 사실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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