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의 대북전단 살포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와 회원 등이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준비하고 있다. 2014.10.1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통일부의 대북전단 살포 자제 요청에도 불구하고 자유북한운동연합 박상학 대표와 회원 등이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 통일동산 주차장에서 대북전단 살포를 준비하고 있다. 2014.10.10/뉴스1 © News1 박정호 기자

풀려나가는 듯 보이던 남북 간 대화 국면이 대북 전단(삐라) 문제로 12일 중대 기로에 선 모양새다.

인천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지난 4일 황병서 총정치국장, 최룡해 당 비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방남하며 남북은 고위급 대화 채널 재가동에 합의했다.

정부가 공개적으로 거듭 "이번을 계기로 남북관계 개선에 노력해 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는 등 지난 2월 이후 경색을 면치 못하던 양측의 대화가 전면적으로 펼쳐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그러나 10일 탈북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민간단체가 살포한 대북 전단을 향해 북한이 총격을 가하면서 양측의 '화기애애' 했던 분위기는 일단 다시 움츠러든 분위기다.

앞서 수차례 우리 측에 '대북 전단 살포 제지'를 요구한 북측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전단에 고사총 사격을 가하며 해상이 아닌 육상 군사분계선에서 4년여만의 남북 상호 총격 상황을 유발했다.

북한은 이어 우리민족끼리,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우리 측의 대북 전단 살포를 비난하며 '제2차 고위급 접촉은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 없다'는 주장을 펼치며 우리 측에 대한 압박을 이어갔다.

이에 따라 양측은 앞서 합의한 '10월 말~11월 초' 고위급 접촉 재개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최근 민간단체들에 "대북 전단 살포에 있어 신중한 처사를 바란다"는 입장을 공개 표명했던 정부는 일단 고위급 접촉은 예정대로 진행한다는 입장이다.

기본적으로 민간단체의 활동을 제지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정부로서는 북측이 이를 빌미로 당국 간 합의를 어기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인 듯하다.

그러나 북측이 이에 정상적으로 호응해 올지는 미지수인 만큼 정부도 공식 제의에 있어 신중하게 임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아직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국방위원회 등 공식 기구를 통해 고위급 접촉에 관한 입장을 명확히 내놓진 않고 있다.

앞선 매체들의 보도에서도 북한은 2차 고위급 접촉의 무산에 대한 엄포를 놓으면서도 "향후 남측 당국의 태도에 남북관계가 달려있다"는 '조건'을 덧붙였다.

따라서 북한의 보다 명확한 진의는 우리 측이 2차 고위급 접촉 시기 및 장소, 의제 등을 밝히는 공식 제의가 나온 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대북 전단 관련 북한의 반응은 전단 살포가 예정된 뒤부터 이미 계획된 수순으로 북한이 당장 대화 테이블에서 철수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을 제기한다.

특히 북한이 아시안게임 참가가 명목이라지만 이례적으로 최고위급 인사 3명을 우리 측에 보내 일련의 대남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오히려 지난 1차 고위급 접촉부터 전단 등을 문제 삼아 상호 비방중상 중단을 주요 의제로 제시했던 북한이 이번 일을 대화의 '카드'로 더욱 적극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우리 측을 상대로 자신들이 적극 제기해오고 있는 대화 의제들이 있는 만큼 북한이 대북 전단을 빌미로 다른 현안에 있어 우리 측을 압박할 여지도 크다.

아울러 최근 국제사회를 통해 제기되는 인권 문제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우리 측과의 대화에 결국 나서는 모양새를 취할 것이라는 전망에도 여전히 힘이 실려있다.

특히 북한은 오는 18일로 예정된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 참가할 선수단을 11일 모든 참가국 중 가장 먼저 파견하기도 했다.

다만 대북 전단이 전통적으로 민감한 문제인 '최고존엄'에 대한 비난과 체제 부정의 내용을 담고 있는 만큼 북한은 한동안 적극적 움직임이 없이 우리 측의 움직임을 살피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보인다.

총격 후 발생하고 있는 군사분계선 및 민통선 인근 주민들과 민간단체들 간 갈등 등 '남남갈등'의 추이도 살필 것이다.

일각에서는 우리 측이 대화 모멘텀 유지 및 남북 각급 대화 채널 복구 차원에서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상호 총격을 계기로 군사 실무회담 등을 추가로 제의하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정부가 이미 이산가족 상봉 행사의 추가 개최를 주요 안건으로 상정한 만큼 적십자 채널, 군사 채널 등 낮은 단계의 대화를 일단 가동한 뒤 고위급 접촉을 통해 최종 타결하는 방식을 통해 양측의 입장을 조율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 북한 전문가는 "지금 상황에선 고위급 접촉이 열려도 현안이 많고 복잡해져 의미 있는 논의가 쉽지 않을 것"이라며 "북측이 이번에 먼저 우리 측에 메시지를 준만큼 우리 측의 다각적 대화 채널 가동 제의에 못이기는 척 호응해 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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