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을 비롯한 일부 유엔 회원국들이 유엔총회의 의결로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를 반(反)인권 혐의로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EU는 이 같은 내용이 들어간 북한인권결의안 초안을 만들어 8일(현지 시각) 우리나라 등 40여개 결의안 제안국들에 비공개로 돌렸다. 제안국들이 이 안(案)을 확정하면 이달 중에 유엔총회 산하 3위원회(인권 담당)에 상정되며, 3위원회를 통과한 안이 총회에 올려져 회원국들의 투표로 의결된다.

이런 움직임은 지난 2월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가 낸 '북한인권보고서'에 근거하고 있다. 조사위는 "북한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 침해와 외국인 납치까지 저질렀다"며 이를 '반(反)인도적 범죄'로 규정했다. 조사위는 '북한의 수령(首領)과 국방위원회·국가보위부 등의 책임자들'을 반인도적 범죄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이들을 ICC에 제소해 개인적으로 형사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권고했다.

유엔은 2005년부터 해마다 총회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을 채택해 오고 있지만 북한의 최고 권력자를 국제 법정에 세우는 안(案)이 논의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유엔 전체 회원국이 말로만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것과 최고 권력자에 대한 처벌 등 구체적인 행동까지 결의하는 건 차원이 다르다. 국제사회의 대북(對北) 인권 압박이 의지와 강도 면에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결의안이 유엔총회를 통과하더라도 ICC 제소는 다시 안보리 의결을 거쳐야 해 앞길은 불확실하다. 그러나 이 정도로 국제사회 분위기가 변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북은 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북이 지난 7일 유엔 본부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권 관련 설명회'를 가진 것이나 리수용 외무상이 지난달 15년 만에 유엔을 찾아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주재한 북한인권회의에 참석을 요청했던 것도 이 때문일 수 있다.

북이 실세 3인방을 갑자기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내려보낸 것 역시 이런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북으로서는 유엔의 대북 인권 압박 대열에서 한국을 이탈시켜 보려는 계산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 우리 내부에는 북한 인권 문제 제기가 남북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러나 '남북대화'를 자신에 대한 압박의 방패막이로 이용하려는 것이 북의 대남 전략이란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이런 전략에 맞서는 길은, 지켜야 할 원칙은 어떤 경우에도 지킨다는 것을 북이 움직일 수 없는 사실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유엔이 총의(總意)로 북 지도부를 재판정에 세우자고 결의하는 날, 세계의 시선은 우리에게도 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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