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진 정치부 기자
황대진 정치부 기자

지난 4일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한 북한 황병서 인민군 총정치국장과 최룡해·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애국가 제창 시 기립한 것이 화제다. 성악가 임선혜씨가 애국가를 선창하는 동안 태극기가 게양됐고 북 3인방은 똑같이 일어나 차려 자세를 취했다. 반면 같은 줄에 있던 남측 관리들의 행동은 저마다 달랐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박수를 쳤고 황우여 교육부 장관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가슴에 손을 얹고 국기에 대한 경례를 했다.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북측 인사들과 같은 자세로 기립했다(본지 6일자 A3면 사진 참조). 한 북한 문제 전문가는 "북측은 이 같은 상황을 염두에 두고 철저히 사전 준비를 한 반면 남측은 그만큼 치밀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정부가 '대통령 면담을 제안했으나 북측이 정중히 거절했다'는 내용을 공개한 것도 부적절했다는 의견이 많다.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은 8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대통령 면담 카드를 그렇게 싸게(쉽게) 쓰느냐"고 했다.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을 지낸 천영우 아산정책연구원 고문은 "너무 마음이 들떠 '우리가 대화에 목매고 있다'는 메시지를 준 셈"이라고 했다. 정보기관 출신 인사는 "야당에서 하도 '박 대통령이 직접 만나라'고 하니 청와대가 '우리도 만나려 했다'는 심정으로 공개한 것 같은데, 결국 북의 남남 갈등 전술에 걸려든 셈"이라고 했다.

류 장관이 김양건에게 김정은의 건강을 묻고 '아무 문제가 없다'는 얘길 국내 언론에 전한 데 대해서도 "외교 관례상 문제가 있다" "류 장관이 통전부 대변인이냐"는 얘기가 나왔다.

북한은 대표단이 돌아간 후 지금껏 회담 결과에 입을 닫고 있다. 7일에는 서해 NLL을 침범해놓고 남측 대응이 과했다며 항의했다. 반면 남측은 북 대표단이 돌아간 지 불과 10시간 만에 류 장관이 지상파 방송에 출연해 "북한이 통 큰 행보를 했다"고 회담 성과를 자평했다. 북이 NLL 교전에 항의하는 통지문을 보낸 사실도 숨기려다 국감에서 들통났다.

북은 남북관계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밀하게 '깜짝쇼'를 연출한 반면 우리 측은 여러모로 허둥댄 흔적을 보였다. 국책연구소 관계자는 "남북 관계의 '근본적 불균형'에서 이런 일들이 기인한다"고 했다. 북한 김정은은 기업에 비유하면 임기 무제한의 '오너' 경영인이다. 그가 볼 때 우리 대통령은 5년짜리 '바지 사장'에 불과하다. 남측 파트너가 맘에 안 들면 마음에 드는 사람이 올 때까지 기다리면 된다. 김양건은 2007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그의 상대인 류 장관은 취임 1년 7개월째다. 북한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때로는 '진지전'을, 때로는 '기습작전'을 구사할 수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우리 정부도 이제 남북 관계만큼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일관성을 지킬 수 있는 방책을 찾아야 한다. "통일부가 하는 일이 없다고 국감에서 의원들에게 뭇매를 맞을 뻔했는데 북한이 구해줬다"(통일부 관계자)는 식의 인식으로는 북과의 '대화'에서조차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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