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리수용 외무상이 27일(현지 시각) 유엔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북한 외무상이 유엔총회에 참석한 것은 15년 만이다. 그렇기에 다른 어느 때보다 유엔을 무대 삼아 활발한 외교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리 외무상은 유엔 본부가 있는 뉴욕에 일주일가량 머물렀지만 24일 박근혜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을 끝까지 들은 것과 27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면담, 자신의 유엔 연설 정도를 빼곤 눈에 띄는 일정이 없다. 유엔을 찾은 각국 외교 사령탑들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보내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북한은 지난 23일 케리 미국 국무장관 주재로 한·일·호주 외교장관과 유엔 인권 최고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북한 인권 회의에 참석하기를 원했지만 거절당했다. 북한은 애초부터 이 회의의 초청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5년 전 북한 백남순 당시 외무상이 유엔을 찾았을 때만 해도 미국은 국무부 한국과장이 직접 백 외무상을 만나 미·북 관계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그러나 이번 리수용 외무상의 미국 방문을 전후해선 어떤 형식의 미·북 회담도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북은 자신들의 외무상이 유엔에서 받은 대접에 상당히 격앙된 듯하다. 유엔 주재 북한 대사는 "당분간 북·미, 남북 대화가 이뤄질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북은 요 며칠 박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서도 모든 선전 매체와 기관을 총동원해 폭언(暴言)을 퍼붓고 있다.

북은 올 들어 외교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외 활동을 부쩍 강화했다. 북한 외교 실세로 꼽히는 강석주 노동당 국제담당 비서가 얼마 전 유럽 4개국을 순방했고, 79세의 리 외무상도 외국에 머무는 시간을 크게 늘렸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북의 입지는 갈수록 옹색해지고 있다. 유엔은 조만간 가장 강력한 대북 인권 결의안을 채택할 가능성이 크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26일 북의 영변 원자로 재가동을 강하게 규탄하는 결의안을 내놨다.

북이 지금의 외교적 고립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은 우리 측의 남북대화 제의에 응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눈에는 북은 '불량(不良)국가'일 뿐이다. 한국의 도움 없이 국제사회의 이런 대북 인식을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북은 유엔에서 남북이 만나자는 우리 제안마저 걷어찼다. 북은 리 외무상이 빈손으로 귀국하게 된 현실을 똑바로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 역시 북과 모든 대화가 막힌 지금의 국면(局面)을 타개할 노력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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