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과 행정부, 학계를 막론하고 독일의 통일 경험을 배우려는 시도가 최근 잇따르고 있다.

독일 한스자이델 재단 한국사무소 대표인 베른하르트 젤리거(Bernhard Seliger) 박사는 19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한반도통일연구원 주최 '독일 통일에서 한반도 통일의 길을 찾는다' 강연회에서 "한반도 통일 문제가 당면한 주요 도전은 주민 대다수의 물질적 측면, 즉 영양부족 현상(undernourishment)"이라고 말했다.

젤리거 박사는 이어 "한국의 경우 영양부족 현상이 양국의 대다수 주민에게 심리적이고, 신체적인 결함문제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 심각하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은 통일과정에서 심리적, 신체적 결함문제를 치료하는 데 대규모 투자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심리학자나 의사처럼 새롭게 출현할 통일 전문가 계층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앞장 설 수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반도통일연구원 대표고문을 맡고 있는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은 이날 "대등하며 포용적인 통일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독일 통일을 '합류(合流)통일'이라고 부르는 것이 정확하다"며 "한반도 통일 역시 한국 주도의 무혈(無血) 평화통일과 합류통일이 바람직하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 최고위원은 "동·서독은 안보문제가 큰 걸림돌이 되지 않았지만 한반도의 경우 북핵문제와 남북 간 군사 긴장완화 등 안보문제의 해결이 선행되지 않고 있어 남·북한 교류·협력분야에 진전을 기대하기 힘든 실정"이라며 "북한 당국이 남북기본합의서 체제로 하루 속히 복귀하든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한 당사자로 들어오든지 결단을 해야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독일 통일과정을 바탕으로 한반도 통일 방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과 독일 외교부는 지난 18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베를린에서 한·독 통일외교정책자문위원회 설립 양해각서에 서명했다. 양국 외교부는 이르면 다음달 말이나 11월초에 자문위 첫 회의를 열 계획이다.

매년 정기적으로 개최될 자문위는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후 독일 통일과정에서 역할을 했던 2+4외무장관회의(동·서 독일과 미국·소련·영국·프랑스 4개국 외무장관 참여)를 통해 베를린 장벽 붕괴 후 과정에서 독일이 어떤 식으로 주변국의 협조를 얻었는지를 검토할 계획이다.

자문위원으로는 양국 외교부 국장급 인사들이 당연직으로 위촉되고 저명한 교수와 전직 장관급 관료도 위촉될 예정이다. 양국 동수 위촉으로 위원 수는 최대 14명이 될 전망이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 19일 주최한 2014 아시아경제공동체포럼 '급변을 통일로' 국제세미나에서는 라스 안드레 리히터 '프리드리히 나우만재단' 한국사무소 소장이 '급변하는 동독의 정세 속에서 독일은 어떻게 통일을 이뤘나'란 제목으로 강연했다.

리히터 소장은 "어떤 이들에게는 1989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너무 빠르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지만 이런 갑작스러운 변화가 가능하게 된 데에는 오랜 기간 동안 준비된 작업들이 그 기반이 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독의 사민당-자민당의 두 연정정부가 내놓은 동방정책과 유럽안보협력회의는 서독과 동독이 서로를 이해해가도록 돕는 초석이 됐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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