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북한에서 민족 최대의 명절은 당연히 김일성과 김정일, 김정은의 생일이다. 추석과 설은 그저 그런 명절이었다. 민족 전통을 계승한다고 하지만 제사를 성대하게 지내는 것은 미신행위라고 비판하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은 변변한 제사상 한 번 차려보지 못했다.

그런데, 북한 인민의 현재와 미래를 책임져 주는 구세주라고 찬양했던 김일성은 전 국민을 기아 직전 상태에 밀어 넣고 사망했다. 아버지의 대를 이어 구세주가 되었던 김정일 역시 수백만명을 굶겨 죽이고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만들어 아들 김정은에게 물려주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끝나지 않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북한 주민들은 조상신에게 제사라도 잘 지내 운명을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김일성이 죽고 나자 제사상을 성대하게 차리는 유행이 시작됐다. 요즘은 명절이 되면 북한의 장마당에서 제수용품이 불티나게 팔린다.

북한 장마당은 고양이 뿔 빼놓고는 다 있다고 해서 ‘만물백화점’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추석이나 설에는 제수용품 때문에 더욱더 붐빈다. 제수용품을 타깃으로 해서 기획 상품을 준비하는 사람들도 있다.

제사상에 필수로 올라가야 하는 생선, 과일, 술 등은 명절이 되면 가격이 폭등한다. 이런 장사를 하는 이들은 대목에 돈을 두둑하게 챙길 수 있다. 김일성 시대에는 볼 수 없었던 또 하나의 추석 풍경은 바로 떡방앗간이다. 꼬리를 알 수 없는 줄이 추석 당일 새벽까지 길게 늘어선다.

김일성 시대에는 배급을 주었기 때문에 쌀이 모자라기는 했지만 굶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도 추석에 떡 방앗간에서 떡가루 내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배급제가 마비되고 굶어죽는 사람은 속출하게 되자 오히려 떡 방앗간에는 떡가루 내려고 줄서는 사람들이 더 늘었다. 도대체 원인이 무엇일가?

북한 주민들은 김일성이라고 하는 국가 최고지도자에게 자신들의 운명을 맡기고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신념으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충성을 해왔지만 결국은 굶어죽을 처지에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민심이 김일성, 김정일을 떠나 조상신으로 옮겨가 조상신에게 운명을 걸고 있는 것이다.

조상신에 대한 제사가 부활하면서 북한에서는 제사상을 만들어 팔거나 대여하는 업종까지 생겨났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상과자 제조가 발달하게 되었는데 쌀이나 밀가루로 생선이나 과일, 꽃 등의 모형을 만들어 튀긴 다음 색을 입혀 제사상이나 결혼식상에 판매하거나 대여를 해준다. 상과자의 품질이 점점 더 좋아지고, 다양한 모양의 상과자도 탄생하고 있다.

그처럼 척박한 자본주의의 불모지에서도 수요가 있는 곳에 공급이 따른다는 시장의 원리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예전 김일성시대 북한 국영상점에는 아무리 필요해도 구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데, 배급제가 마비되고 계획경제가 거덜이나 국가가 상품을 전혀 만들어내지도 못하고 있는 요즘은 수요만 있으면 상품이 나와 장마당에서 팔린다. 이 때문에 북한주민들은 계획경제 때보다 더 편리하게 많은 편리함을 누리고 있다.

이 한가지 보더라도 사회주의 계획경제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훨씬 우월하고 서민들에게 유리한 경제체제라는 건 쉽게 알 수 있다.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이다. 그 자유를 기반으로 한 장마당이 그나마 북한 주민 생활의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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