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이다. 부모님이 계시고, 형제들이 모이고, 어린 시절의 추억과 정 때문에 생각만 해도 가슴 먹먹해지는 고향으로 모두들 발걸음을 재촉한다.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속도로와 만원을 이룬 기차, 버스를 보면서 고향으로 가고 싶은 안타까움을 달래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6.25전쟁 때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과 그 가족들, 그리고 탈북민들이다. 이들은 한맺힌 38선 때문에 그처럼 가고 싶은 고향에 갈 수가 없다. 그래서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나 설이 이들에겐 더 슬프게 다가온다.

실향민들과 탈북민처럼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또 있다. 바로 국군 장병들이다. 이번 추석에도 탈북 여성들과 탈북 대학생들은 고향에 갈 수 없는 동병상련의 안타까움과 그리움을 담아 통일약과를 정성껏 만들고, 비무장지대(DMZ)에서 수고하는 국군장병들을 찾아간다.

북한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다.

북한은 선군정권이기 때문에 군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으로 한다. 1990년대 이전 국가 배급체계가 작동하던 시절에는 국가가 직접 인민군 지원을 장려했다. 지원품목은 주로 집에서 직접 기른 돼지가 주류였다. 돼지를 직접 기르지 않는 사람들은 돈으로 돼지를 사서 보냈다. 노동당 입당을 원하거나 나쁜 출신성분을 극복하고 싶은 사람들 중에 돈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인민군 지원에 열성적인데, 북송된 재일교포나 중국에 친척이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인민군 지원은 주로 김정일 생일이나 김일성 생일에 이뤄진다. 트럭에 돼지를 몇 마리씩 직접 싣고 군부대를 찾아간다.

1990년대 이후 북한의 배급체계가 무너지고 전국적으로 식량난의 칼바람이 몰아치자 인민군도 식량난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때부터는 군 부대 지원물자 품목이 돼지 외에도 강냉이(옥수수)와 콩, 된장, 고추장 등으로 확대됐다. 군 부대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물자를 군인 가족에게 강요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초 8군단에서 인민군 생활을 했던 내 동생은 한 달이 멀다하게 집으로 휴가를 나왔는데, 올 때마다 중국제 고급담배와 술, 맥주, 뽀베지트(텅스텐 합금), 장판지, 벽지, 페인트, 니스, 락카, 신나, 휘발유, 목재 등을 갖고 부대로 돌아갔다.

이런 물자를 잘 구해서 부대에 충성하면 노동당 입당, 제대 후 좋은 대학 입학 추전 등이 대가로 돌아온다. 실제로 그 때 동생 뒷바라지를 열심히 한 결과, 동생은 조선노동당에 입당하였고 대학에 추천을 받아 입학했다.

최근에는 북한 인민군 재정사정이 더 나빠져 아들이나 딸을 인민군에 보낸 가족들에 대한 수탈이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수시로 군인 부모들에게 식량을 가져오라고 하고, 식량 외에도 군부대 운영에 필요한 다양한 물자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고 한다. 물자지원을 할 수 없는 집은 군인 어머니들이 부대에 불려들여가 직접 일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 인민군은 인민군이 아니라 엄마 군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우리 군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북한군은 식량난과 경제난으로 영양실조에 걸리고 물자 부족으로 운영이 안돼 썩어가고 있는데, 대한민국 군인들은 풍요로운 생활 속에서 주적 개념을 잃어버리고 싸움의 대상을 망각하다보니 장병들끼리 싸우고 죽이는 비참한 일들이 발생하는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탈북여성들과 탈북대학생들, 그리고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을 모아 만든 통일약과가 장병들의 자부심을 일깨우고 자유민주주의 통일의 기초는 바로 튼튼한 국방에서 나온다는 책임의식을 드높일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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