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1980년대, 먹고 사는 모든 문제를 국가가 통제하고 관리하던 사회주의 배급체제가 붕괴되면서 북한에서는 ‘장마당’이 급속히 발전한다. 이전에도 농민들이 만드는 수공업 제품 등을 파는 소규모 농민시장이 잔존해 있었지만,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을 갖춘 장마당이 본격화된 것은 이때부터이다.

국가가 운영하는 국영상점에는 진열대 위에 진열해놓은 상품 밖에 없고, 그 진열품조차도 진품이 아닌 모조품인 경우가 많았다. 내용물은 빼놓고 포장 용기만 남아 있는 상품도 허다했다.

반면, 장마당에선는 언제 어디서든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 때문에 “고양이 뿔 내놓고는 다 있는 만물백화점”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지붕도 없는 야외에서 햇볕에 까맣게 구을려 가며 장사를 한다고 해서 햇볕백화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장마당은 현재 북한주민들에게서 뗄레야 뗄 수 없는 생존무대가 되었다. 어쩌면 북한 3대세습체제의 운명을 그나마 연장시켜주는 일등공신이 아닐까도 싶다.

2009년 11월 말 김정은이 후계자로 등장하면서 급작스러운 화폐개혁을 진행하고 장마당을 폐쇄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결국 김정은은 장마당을 청산하는 싸움에서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북한주민들은 생계 유지의 수단인 장마당을 끝까지 지켜냈다.

처음 장마당이 등장할 때만 해도 북한주민들은 장사하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했다. 국가가 배급을 주겠다고 하면서 장사를 못하도록 통제를 하는 것에 따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가 시키는 대로 따랐던 착한 북한주민은 모두 굶어죽었다. 반대로 정부 지시를 거부하고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장사를 한 주민들은 살아남았을 뿐만아니라 재산과 부를 축적했다.

그래서 북한 장마당 상인들은 장사를 하다가 안전원들에게 단속을 당하면 “사회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장사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배급을 줘야 할 국가가 배급도 안주고, 직장에 나가도 할 일이 없어 출근부에 도장만 찍으면서 월급도 못 받는 상황에서 국가 지시대로 꼬박꼬박 직장에 나가면 굶어죽는 길 밖에 없었다.

그러니, 사회주의 북한을 지키려면 최소한의 사람들이 살아남아야 하고, 살아남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먹기 위해선 장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국가가 아무리 일을 해도 월급도 안주고 배급도 안주니, 쌀을 구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고, 돈을 벌려면 장사를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것이 북한 주민들의 답변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사회주의 북한을 지키기 위해서 북한주민들이 동원한 방법이 바로 북한이 그토록 배격하는 자본주의 방식이었고 장마당 장사였던 것이다.

장마당에서 장사를 하는 것은 불법이어서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부터 장사한 사람들은 지금 한밑천 잡아서 많은 부를 축적했다. 요즘은 북한에서 많은 돈을 번 사람들이 오히려 남한에서 생계의 어려움을 겪는 탈북자 가족에게 역으로 돈을 보낸다고 하는데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말이다.

남한사람들이 통일문제를 생각할 때 가장 걱정하는 것은 통일비용이지만 어쩌면 북한에서 장사를 해서 부를 축적한 사람들은 남한 일반인들보다 돈이 훨씬 더 많을지도 모른다. 향후에 북한 주민들이 남한 사업가들에게 돈을 빌려주는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

북한주민들은 큰돈이 생기면 무조건 달러나 위안화, 엔화 등으로 바꿔 저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외환보유량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때 북한 청진 사람들이 평양으로 물품 운송을 맡길 때 한 사람이 운전기사에게 내는 돈이 1000달러라고 했다. 대형화물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육로로 평양을 운행하면서 여러 사람들의 짐을 실어주게 되는데, 평양행 한 번에 수천달러에서 1만 달러 이상을 벌수도 있다는 것이다.

새삼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의 원리가 가장 확실하게 적용되는 것이 현재의 북한이 아닐가 싶기도 하다. 현재 북한 장마당은 한번에 수만 달러를 벌어들일 수 있는 기회도 있지만 한 번에 수만 달러를 몰수당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장마당이 사회주의체제를 유지시키는 지금의 구조가 계속된다면 북한 주민들도 더 극심한 소득 불균형와 부익부 빈익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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