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물 남파간첩 이선실(사진)의 사망 경위와 사망 시점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조선DB
거물 남파간첩 이선실(사진)의 사망 경위와 사망 시점에 대한 새로운 주장이 제기됐다/조선DB

1990년대 최대 간첩사건인 ‘남한 조선노동당 사건’ 당시 사건의 배후로 꼽혔던 거물 남파간첩 이선실(여·1916년생)이 북한에서 안기부 간첩으로 몰려 고문을 받다가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또 사망시기도 지금까지 알려진 2000년8월이 아니라 1999년 말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전문 매체 NK지식인연대는 12일 대북소식통을 인용해 “이선실이 ‘심화조’사건 당시인 1999년말 안기부 간첩 혐의로 체포돼 고문을 받다 사망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보도했다. 이선실은 당시 “미제의 간첩으로 남한에 있는 지하혁명 조직들을 모두 파괴하고 우리 공화국(북한)을 내부로부터 와해시키기 위한 임무를 받고 침투한 자”로 규정됐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심화조’ 사건은 1990년대 후반 체제 위기 때 김정일이 권력 기반을 공고히 하기 위해 일으킨 대규모 숙청사업이다. 북한은 사회안전성 내에 ‘심화조’라는 조직을 만들고, 이 조직이 중심이 돼 북한 고위급 2만여명을 간첩 등으로 몰아 처형했다.

이선실은 1990년대 남파공작원 중 최고위급으로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을 지냈다. ‘남한 내 합법적인 북한 전위정당을 구축한다’는 목표로 일본에 건너간 뒤 1980년 재일교포 ‘신순녀’로 신분을 위장하고 남한에 침투했다.

이후 남한과 일본을 오가며 민중당 대표를 맡고 있던 간첩 김낙중,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 등 400여명을 포섭해 북한을 지지하는 대중정당과 지하당 구축을 시도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는 1992년 이 사건을 조사해 이선실과 협력한 김낙중, 손병선 등 124명을 검거했다.

하지만 이선실은 사건이 불거지기 전인 1990년10월 강화도 해안에 대기 중이던 반잠수정을 타고 북한으로 귀환했다고 당시 안기부는 밝혔었다.

북한으로 돌아간 이선실은 김일성으로부터 공화국 2중영웅, 국기훈장 1급, 조국통일상을 수여받았고, 북 통일전선부 산하 대남연락소 남파간첩 교육 담당, 경공업 부문 책임자 등으로 일하다 2000년 8월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었다.

하지만 NK지식인연대는 이선실이 ‘심화조’ 사건 당시인 1999년 심화조 대장 채문덕으로부터 고문을 받다가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NK지식인연대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000년11월 ‘민족반역자 채문덕 놈의 죄행’이라는 해설 자료를 국가보위부 간부와 각 시·군 당 부장급들에게 돌렸는데, 이 자료에는 ‘수없이 적후를 드나들면서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맡겨진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낸 혁명동지까지 고문으로 사망케하는 만행을 서슴치 않았다’는 대목이 있다. 여기서 언급된 ‘혁명동지’가 이선실이 유력하다는 것이다. ‘심화조’ 사건 당시, 수많은 북한 당 간부들을 미국 또는 남한 정보기관의 첩자로 몰아 숙청했던 채문덕은 이후 자신도 숙청 대상이 됐다.

NK지식인연대는 또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이 ‘심화조’ 사건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이선실을 언급하면서 ‘이선실을 애국열사릉에 인장하라’고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이 지시가 있었던 날이 지금까지 이선실 사망일시로 알려진 2000년8월로 확인됐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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