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獨에 유학왔던 北남편과 생이별"그의 묘비에 아들들 이름 새겼으면…"

 
 
독일 베를린에서 13일 열리는 '원코리아 뉴라시아(One Korea New-eurasia) 자전거 평화 대장정' 출정식에서는 북한 유학생 남편을 둔 구(舊) 동독 출신 레나테 홍(77·사진) 할머니의 애끊는 망부가(亡夫歌)가 울려 퍼진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1955년 동독으로 유학 와 화학을 전공하던 남편 홍옥근(사망)씨와 같은 과 학생으로 만나 결혼까지 했지만, 북한의 귀국 조치로 6년 만에 남편과 생이별을 했다. 그는 이번 출정식에 참석, 원정대와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53년간 삭여온 남편에 대한 그리움과 한반도 평화에 대한 염원을 풀어낼 예정이다.

옛 동독 지역인 예나시(市)에 살고 있는 레나테 홍 할머니는 11일 가진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온 내 남편은 1961년 이곳에서 열차를 타고 북으로 귀국한 뒤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다"며 "유라시아 원정대와 함께 남편의 고향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에 젊은 아산서원 졸업생 7명과 함께 자전거를 타면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겠다고 했다. 그는 "남편이 동독과 북한을 오갔던 시베리아 열차 구간이 이번 원정대의 경로와 상당히 일치한다"며 "나도 원정대와 함께 유라시아를 달리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또 "끝까지 함께 페달을 밟진 못해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소식을 접하며 원정단을 응원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소망을 이루려면 마음속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통일 직전 동독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동독 주민들은 거리로 나와 '우리는 한 민족(Wir sind ein Volk)'이라고 외치며 통일을 요구했다"며 "심지어 분단 이후 태어난 아들들도 '언젠간 당연히 통일이 이뤄질 것'이라고 믿었다"고 말했다.

"통일은 단순히 정부가 원한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라 국민 모두의 마음이 모여야 한다"고도 했다.

(오른쪽 사진)레나테 홍 여사 가족이 1961년 3월 찍은 가족사진. 홍옥근씨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에 찍은 것이다. /레나테 홍 여사 제공
(오른쪽 사진)레나테 홍 여사 가족이 1961년 3월 찍은 가족사진. 홍옥근씨가 북한으로 돌아가기 한 달 전에 찍은 것이다. /레나테 홍 여사 제공
예나대 화학과 학생이던 레나테 홍 할머니는 1955년 같은 과(科)의 북한 유학생 홍옥근씨와 사랑에 빠졌다. 6년 열애 끝에 "동양인은 안 된다"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학 근처 단칸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그해 첫아들도 태어났지만 행복은 짧았다. 1961년 동독 주민이 서독 등으로 집단 탈출하기 시작하자 북한은 동구권 유학생들에게 '이틀 내 귀국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내가 홀몸이었으면 그때 남편을 따라 북한으로 갔을 것"이라며 "둘째를 임신 중이라 일단 예나에서 기다리기로 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남편 홍씨는 10여일간 베를린·바르샤바·모스크바·노보시비르스크·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갔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귀국하던 남편은 열차가 정차할 때마다 틈틈이 엽서를 보냈다"며 "남편이 갔던 그 먼 길을 대원들이 자전거로 횡단한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레나테 홍 할머니가 남편과 헤어진 후 처음 2년간은 독일과 북한 간 편지가 오갔다. 그러나 곧 '수취인 불명' 도장이 찍혀 돌아왔다. 그는 두 아들을 홀로 키우며 남편을 기다렸다. 외교 당국과 적십자사에 탄원을 하고, 유학생 등에게 남편의 생사를 수소문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부부는 지난 2008년 북한 당국이 외국인 이산가족 상봉을 허용하면서 영화처럼 재회했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외국 국적자의 입북을 허용한 첫 케이스였다. 아내는 두 아들을 데리고 평양을 방문했고, 북에서 재혼한 남편은 딸을 데리고 나왔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헤어지기 전 남편에게 "우리를 갈라 놓은 세상도 아름다운 추억만큼은 앗아갈 수 없을 거예요. 나를 기억해주세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남편 홍씨는 두 번째 상봉을 9주 앞둔 2012년 심장마비로 숨졌다. 레나테 홍 할머니는 "이제 남편은 북한에 없지만 북한에 다시 가서 남편의 딸을 만나고, 묘비에 아들들의 이름을 새기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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