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獨 청년 통일마당… 독일 통일의 주역들과 간담회]

- 슈뢰더 舊 동독 前 의원
"한국, 北 지도층에 대해 '통일뒤 不처벌' 약속해야 北이 통일 협상에 임할 것"

- 슈납아우프 前 獨내무부 국장
"서독, 동독과의 통합 위해 '흡수통일' 표현 사용 안해"

뉴라시아 자전거 원정대는 11일 아산정책연구원·베를린자유대학과 공동으로 독일 통일의 주역들과 연쇄 간담회를 가졌다. 구(舊)동독 사민당 원내대표를 지낸 리하르트 슈뢰더(Schr�der·71) 전 의원은 이날 베를린자유대 헨리 포드 기념관에서 가진 '한·독 통일 청년마당' 간담회에서 "북한 지도층에 대해 '통일 뒤에도 처벌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야만 북한이 통일 협상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슈뢰더 전 의원은 "동독처럼 북한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보느냐"는 김영미 원정대원의 질문에 "북한은 동독과 달리 야당이나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전혀 감지되지 않기 때문에 (남한이) 북 지도층과 협상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는 "(한국이) 한편으로는 통일을 하고 싶고,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 지도자들을 처벌하고 싶겠지만,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불(不)처벌 약속이 없으면 북 지도층이 통일을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동독 공산당이 지속됐다면 서독은 동독 주민을 위해 동독 정권에 경제적 지원을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헨리 포드 기념관 내부 모습. 뉴라시아 원정대원들과 아산서원 학생들이 구 동독 사민당 원내대표를 지낸 리하르트 슈뢰더(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안경 낀 사람) 전 의원과 함께 11일 헨리 포드 기념관 중앙홀에 걸려 있는 유명인사들의 대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오종찬 기자
독일 베를린자유대학의 헨리 포드 기념관 내부 모습. 뉴라시아 원정대원들과 아산서원 학생들이 구 동독 사민당 원내대표를 지낸 리하르트 슈뢰더(뒷줄 왼쪽에서 세번째 안경 낀 사람) 전 의원과 함께 11일 헨리 포드 기념관 중앙홀에 걸려 있는 유명인사들의 대형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오종찬 기자
슈뢰더 전 의원은 목사의 길을 걷다가 민주화 운동에 참여한 뒤 동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실시된 민주 선거에서 당선됐다. 통일 이후에도 동·서 통합 과정에서 주축 역할을 했다.

이어 베르너 페니히(Pfennig·70) 자유대학 명예교수는 "한국의 유라시아 진출은 서독의 동방정책(Ostpolitik)처럼 통일을 앞당기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동아시아 전문가이자 베를린 한국학연구소 고문인 페니히 교수는 이날 기조연설에서 "유럽 지역의 교류와 협력 수준이 높아지면서 독재 정권이 서서히 설 땅을 잃게 됐다"며 "특히 유럽 공동체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분단 상황은 구시대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이 북한과 지리적·역사적 이유로 유대 관계에 있었던 유라시아 국가들과 차례로 호혜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대북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클라우스 디터 슈납아우프(Sch napauff·69) 전 독일 내무부 헌법국장은 "통일 당시 동·서독의 국력 차는 굉장히 컸고, 통일도 동독이 서독에 들어오는 형식이었다"며 "하지만 동·서독 통합을 위해 흡수 통일이라는 표현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서독에서 법을 전공한 그는 통일 직전인 1990년 내무부에서 '통일 조약' 작성 작업을 주도했다. 지금은 당시 경험을 살려 한·독 통일자문위원회 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서독에서는 통일에 대해 법적으로 어떤 대비를 했느냐"는 안영민 원정대원의 질문에 "서독은 1949년 기본법(최고법)을 제정할 때 동독이 서독에 '가입'하는 안(23조), 새 국가를 건국하는 안(146조) 등 통일 시나리오에 따른 법적 근거를 마련해 뒀다"고 했다. 그는 "동독이 서독에 들어왔지만, 경제 재건 등 모든 통합 과정은 동·서 간 대등한 합의에 따라 진행했다"며 "남·북도 통일과 관련한 합의나 약속을 꾸준히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도 오토바이를 타고 유라시아 대륙을 건너는 게 꿈이었다"며 "여러분의 긴 여정과 경험이 북한에도 알려지길 빈다"고 했다.

☞리하르트 슈뢰더 전 의원

동독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민주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 1990년대 말 통일독일의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동독 대학에서 신학을 가르치고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1988~1989년 동독 민주화 운동에 가담했다.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