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주의자들이 세웠던 장벽마저도 훌륭한 투자처가 됐다."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이달 4일 독일 베를린 장벽 근처 개발지가 부자들에게 좋은 투자대상이 되고 있다며 이같이 전했다. 베를린의 중심지라는 사실이 새삼 부각되면서 독일 전역에서 자금이 몰려들고 있다는 것. 데일리메일은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25년이 지난 지금, 이곳은 이제 분단의 상징에서 베를린 자산시장의 붐을 보여주는 곳이 됐다"고 적었다.

지난 3월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門)을 시찰하며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브란덴부르크문(門)은 분단 시절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으나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는 통일의 상징이 됐다. /뉴시스
지난 3월 독일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門)을 시찰하며 클라우스 보베라이트 베를린 시장의 설명을 듣고 있다. 브란덴부르크문(門)은 분단 시절 동·서 베를린의 경계였으나1989년 11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나서는 통일의 상징이 됐다. /뉴시스
베를린의 사례에서 보듯, 통일 이후 동독지역 경제 부흥에는 서독의 자본이 큰 역할을 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매년 서독 국내총생산(GDP)의 5%가량이 동독에 투자됐다. 지금까지 들어간 돈만 2조유로(약 2700조원)에 달한다.

 
 
선봉에 선 건 서독 기업들이다. 이들은 동독 전역에 공장을 새로 짓고 대규모 직원 채용에 나섰다. 바스프와 바이엘 같은 석유화학 기업과 BMW, 폴크스바겐, 다임러 벤츠 등 자동차 대기업이 동독에 새 둥지를 틀었다. 일자리가 생기자 통일 초기 급증했던 동독 주민의 대량 이탈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통일 독일 정부는 효율성이 떨어지는 동독 국영기업 수술에 나섰다. 통일 직전 세워진 신탁청 주도 하에 대규모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민영화된 기업을 서독 기업들이 인수하는 식으로 동독 경제의 구조개편이 이뤄졌다. 1990년에서 1994년까지 4년간 매각된 동독기업만 1만4000여개에 달했다.

이제 작센 안할트주(州) 비터펠트볼펜시(市)는 바이엘사가 1년에 알약 90억개를 생산해 내는 전진기지가 됐다. 유럽 최대 자동차 그룹인 폴크스바겐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문으로 널리 알려진 드레스덴에서 고급 세단 페이톤을 생산하고 있다.

지난해 동독 지역에서 만들어진 자동차는 모두 62만대로 통일 전의 9배에 이른다. 독일에서 동독이 차지하는 수출 비중도 1990년대엔 한자릿수 대에 불과했지만, 이제는 34%로 커졌다. 서독 기업들의 과감한 투자로 1990년대 고속성장의 기반을 닦은 동독에 대해, 독일 언론 슈피겔은 "통일 후 20년간 동독은 서독을 상당 부분 따라잡았고 지금도 진행 중"이라 평가했다. 심지어 2007년 집계로 자동차를 소유한 동독 주민은 57%에 달해, 51%에 그친 서독을 누르기도 했다. 다만 정서적 이질감을 좁히는 일은 여전히 숙제다. 이는 통일을 준비하는 우리에게 훌륭한 모범 사례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봉현 IBK 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우리 기업의 북한 진출은 북한 주민들의 대량 탈북을 막는 동시에 남북한 경제력을 좁힐 수 있는 결정적인 요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한반도와 독일의 상황이 서로 다른 만큼, 기업 투자의 문을 열기 전 다양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김계환 산업연구원 국제개발협력실장은 "통일 이후 투자에서 우리 역시 기업이 핵심이 될 것"이라며 "무역, 환율, 임금 등 제도적 측면뿐만 아니라 각 산업간 경쟁력 등 사전에 준비해야 할 것이 많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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