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칼럼
[스칼라튜] ‘건국아버지들’이 좋아한 맥주
NK조선  |  nkchosun@chosun.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4.08.07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출처 - 자유아시아방송 그렉 스칼라튜 ∙ 미국 북한인권위원회 사무총장

덥고 습기 많은 여름 초복, 중복, 말복을 겪으면서 남북한 사람들은 이 시기에 항상 시원한 맥주를 떠올립니다. 북한 텔레비전에서는 약 5년 전부터 ‘대동강 맥주’를 선전하는 동영상 광고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도 많은 북한 사람들은 식량 위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었지만, 14년 전 북한 정부는 중고 맥주 양조장을 영국의 ‘브리티시 어셔즈’(British Ushers)라는 회사로부터 들여왔습니다. 평양 동쪽에 있는 양조장에서 만든 대동강 맥주, 특히 생맥주는 평양의 호프집에서 인기가 좋습니다.

18세기에 미국을 세운 ‘건국의 아버지’ 중 한 명이자 미국의 초대 정치인, 과학자, 외교관과 계몽사상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 (Benjamin Franklin)은 ‘맥주는 하느님이 인간을 사랑하시며 우리가 행복하길 바라신다는 증거’ 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습니다.

2차대전 직후 소련의 군홧발에 짓밟혀 공산주의 국가가 되어 버린 동유럽 국가들도 맥주의 전통이 아주 깊습니다. 특히 체스꼬 맥주는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체스꼬슬로벤스꼬 (체코슬로바키아) 주민들은 1989년 11월 17일부터 1989년 12월 29일까지 ‘벨벳 혁명’ 또는 ‘신사 혁명’이라 불리는 피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비폭력으로 공산주의 정권을 무너뜨렸습니다. 민족이 다른 체스꼬와 슬로벤스꼬 주민들은 공산주의 독재가 붕괴된 지 3년이 지난 1993년 1월 1일 국민 투표를 통해 체스꼬와 슬로벤스꼬, 두 나라로 평화롭게 분리되었습니다.

현재 두 나라는 유럽연합과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의 군사동맹인 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되어 있습니다. 분리되기 전 체스꼬슬로벤스꼬의 마지막 대통령, 또는 체스꼬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과 ‘건국 아버지’는 바츠라프 하벨 (Vaclav Havel)이었습니다. 하벨은 공산주의 독재를 반대하던 반체제 극작가 출신이었습니다. 1936년에 태어나 2011년에 세상을 떠난 하벨이 대통령 재임 시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젊은 시절 하벨은 맥주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공산주의 독재정부는 수백 년을 걸쳐 유명하던 체스꼬의 맥주 양조장들의 주인들을 숙청하여 몰아내고 그들의 공장들을 압수하여 국유화했습니다. 그래도 젊은 하벨이 일하던 맥주 공장은 공산주의 시대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맥주 생산법을 잘 알면서 맥주 제조에 자부심을 가지던 공산당 간부가 들어왔습니다. 그 사람의 노력으로 공장 노동자들은 영감을 얻어 비효율적인 공산주의 경제 체제하에서도 질이 아주 좋은 맥주를 생산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 경제는 시장경제처럼 수요와 공급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지도부로부터 내려온 중앙계획에 의해 움직이는 것입니다. 자유시장 경제에서 능력이 있는 기업가들은 번영하지만, 공산주의 독재 국가이던 체스꼬에서 맥주를 사랑하고 보람을 느끼며 일을 열심히 하던 하벨의 공장 간부는 질투가 심한 다른 간부들의 미움을 받아 해고를 당했습니다. 하벨이 자신의 이 젊은 시절 이야기를 하면서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하는 효과적인 자본주의 경제와 멸종의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는 비효율적인 공산주의 경제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하곤 했습니다. 물론 현재 자유시장을 바탕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된 체스꼬는 질이 높은 온 세계에 알려진 맥주의 전통을 또다시 살리게 되었습니다.

옛날 동유럽 공산주의 국가 중 북한과 가장 비슷한 나라는 북한에서 ‘로므니아’라 불리는 독재국가 루마니아였습니다. 19세기후반부터 루마니아에 자본주의 경제와 금융이 활발해지고 사람들의 생활 수준도 많이 향상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여서 특히 정치에 대해 토론할 때면 도수가 높은 양주나 포도주보다, 편하게 마시며 이야기 할 수 있는 비교적 도수가 낮은 맥주를 선호하는 편입니다. 제2차 대전 직후 루마니아가 공산주의 국가로 변한 후, 맥주 산업도 위기에 빠졌습니다. 모든 산업이 국유화 되면서 소규모의 맥주 양조장이 없어졌고, 루마니아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두 세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맥주 생산은 국가 독점이었기 때문에, 경쟁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맥주의 맛과 질은 점점 더 악화되었습니다. 또한 일반주민들은 비밀경찰에 의한 감시와 통제가 두려워 호프집에 모여 옛날처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진 다음 루마니아의 맥주 산업과 호프집의 토론 문화는 다시 부활했습니다. 경제가 개방되면서 소규모의 맥주 양조장들이 곳곳에 많이 생겨, 수백 종류의 국산 맥주는 수입 맥주와의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실내나 실외 호프집에 모여, 맥주를 마시며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유럽으로부터 기술을 수입해 북한에서 질이 좋은 맥주를 1년에 약 7만 킬로리터를 생산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일입니다. 앞으로 북한이 루마니아와 체스꼬처럼 경제 개혁과 개방을 받아들여 북한의 주민들도 국유 산업이 아닌 개인 양조장을 운영할 때를 기대해 봅니다. 미국의 ‘건국 아버지’ 벤저민 프랭클린과 체스꼬의 ‘건국 아버지’ 바츠라프 하벨이 좋아하던 맥주가 북한에서도 자유시장과 표현의 자유의 상징이 될 날이 올 것입니다.

NK조선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  Tel : (02)724-6650,6523  |  E-mail : nkchosun@chosun.com  |  청소년보호책임자 : SITE_MANAGER
Copyright © 2013 NKchosun.com. All rights reserved. Contact webmaster for more inform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