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농법의 상징인 '영양단지'파종이 인력부족과 식량난 등으로 흐지부지 되고 있다. 사진은 영양단지를 찍는데 필요한 퇴비를 나르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

북한의 이른바 주체농법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영양단지'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 영양단지는 부식토와 퇴비, 화학비료와 흙을 반죽해 일정한 크기로 찍어낸 것으로, 여기에 씨앗을 넣는다. 추운 날씨를 고려해 어린 모의 발육기간을 앞당기고 영양을 충분히 공급하기 위한 방법이다.

해마다 겨울이 지나고 3월이 오면 각지 협동농장에서는 옥수수 영양단지 모판준비 작업으로 분주했지만 95년 이후 극심한 기근과 인력부족으로 이제는 이런 모습을 찾기 어렵게 됐다. 함경북도 명천군의 한 협동농장에서 최근까지 일했던 김명호(30ㆍ가명)씨는 "1995년 이전부터 영양단지를 만드는 포전(논밭)이 줄기 시작했고 지금은 20~30%에서만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영양단지 농법이 시들해진 것은 인력부족 때문이다. 봄철 농사에 동원되던 학생들이 식량난 등으로 학교에 제대로 나오지 못하면서 농촌동원 인력도 턱없이 부족해졌다. 게다가 농장원들까지도 봄철 식량난을 겪으면서 노동의욕이 떨어지자 힘든 영양단지 찍기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됐다. 영양단지 만들기는 농사에서 가장 힘든 일로 꼽힌다.

주체농법에 규정된 대로 영양단지를 만들자면 부식토와 퇴비가루, 화학비료 등이 있어야 하고 이를 물로 반죽해 손기계로 하나하나 찍어야 한다. 농민들은 기계로 찍는 대신 반죽한 것을 모판에 펴고 일정한 크기로 자르는 방식을 쓰기도 했지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부식토와 유기질 비료가 점점 줄어들어 영양단지가 아니라 흙단지가 돼버렸다는 이야기가 나온지 오래다. 추운 북부지방을 제외하고는 영양단지 자체의 효과에 대해서도 농민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라고 한다.

최근 탈북자들에 따르면 지금은 남포시 강서구역 청산리나 평남 평원군 원화협동농장과 같은 김부자의 현지지도가 있었던 특별한 곳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농장에서 영양단지를 외면하고 있다고 한다. 웬만한 협동농장에서는 직파(씨앗을 직접 땅에 심는 것)를 선호하고 있는데 직파를 하면 농사는 훨씬 쉽지만 종자가 많이 들게 된다.
/강철환기자 nkch@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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