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일 작가·망명북한펜센터 상임이사
림일 작가·망명북한펜센터 상임이사

해방과 동시에 분단을 맞은 1945년부터 8년간 자유를 찾아 북에서 내려온 이는 '실향민', 휴전 이후 남하한 이는 '탈북자'다. 이북에서 온 이들을 지칭하는 같은 뜻인데도 '실향민' 이름은 하나인 데 비해 '탈북자'를 지칭하는 용어는 너무 많다. 1950년대 초 '월남귀순자'로 시작해 '귀순용사'(1960~70년대), '탈북자·귀순북한동포'(1980년대), '북한이탈주민·새터민'(1990년대 이후) 등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만든 호칭이다. 사회기관, 종교단체, 남한 사람들이 제각각 부르는 '자유북한인' '탈북동포' '하나인' '탈북주민' '통일인' 같은 용어도 있다.

현재 국가 기관(북한이탈주민재단)이 쓰는 '북한이탈주민'은 호칭부터 잘못됐다. '이탈'이란 정도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동족을 위협하는 핵 개발에 광분하고 죽은 수령의 동상 건립에 수천만달러를 탕진하며 인민을 굶기는 북한 정권이 정상 국가란 말인가?

2005년 정부가 공을 들여 만든 호칭 '새터민'은 더 가관이다. 북한도 헌법상 대한민국 땅인데, 다른 지방에서 왔다고 '새터민'이라고 하면 경상도·전라도에서 서울로 온 이들도 새터민이다. 오죽했으면 당사자들이 "우리가 새터민이면 남한 사람들은 헌터민인가?" 하는 우스갯소리까지 할까. 국민이 일상적으로 쓰는 '탈북자' 호칭에도 문제가 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 등 제3국에서 떠도는 이도, 남한에 들어온 이도 똑같이 '탈북자'로 지칭함은 매우 혼란스럽다. 미국에 정착한 '탈북자'라고 하면, 그가 남한에 살다가 간 사람인지, 제3국에서 바로 간 사람인지 알 수 없다. 북한이 탈북 주민을 지칭해 쓰는 '배신자' '변절자'처럼, '탈북자'는 어감도 안 좋다. 반면 '탈북민'의 '민'은 '국민'의 '민'자와 같아 부드럽고 따뜻한 기분마저 든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과 동남아 등 외국에 있는 이들은 '탈북자'로, 대한민국에 입국한 이는 '탈북민'으로 지칭하면 어떨까. 합법적 이민제도가 있는 남한에 왔다가 외국에 나간 이는 '탈북민 출신'으로, 미국·유럽 등 제3국에서 바로 정착하는 이는 '탈북자 출신'이라고 하면 분명하다. 2000만 인민의 굶주림으로 이룩한 3대 세습 독재정권인 북한을 뛰쳐나온 용감한 '탈북자'들과 남한에 들어온 멋진 '탈북민'들은 분명히 통일 한국의 위대한 선구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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