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최신 형사소송법에 대해 논의 중인 이백규 변호사,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
북한의 최신 형사소송법에 대해 논의 중인 이백규 변호사,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왼쪽부터).

지난해 말 북한 장성택의 처형은 바깥 세계에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이었던 장성택은 작년 12월 8일 북한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 현장에서 체포된 후 12월 12일 특별군사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자마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북한 권력 2인자가 공개적으로 체포된 뒤 단심(單審) 군사재판을 거쳐 단 4일 만에 처형됐다는 사실은 북한이 과연 사법제도라는 것을 갖춘 정상적인 국가인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도 나름대로 체계적인 사법제도를 갖고 있다. 장성택 처형의 법적 근거가 됐던 것도 형법 제60조로 국가전복음모죄였다. 체포에서 처형에 이르는 법적 절차를 명시한 형사소송법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법제도가 ‘수령의 나라’에서는 무용지물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문제다. 북한에서 법은 과연 어떤 위상과 의미를 가질까.

자유민주연구원(원장 유동열)이 최근 입수한 북한 형사소송법전은 이런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인권의 가늠자가 되는 형사소송법은 북한이 남한보다 4년이나 앞선 1950년에 제정했다. 북한의 형사소송법은 1976년과 1992년 부분 개정됐고 2004년 전면 개정됐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2004년 전면 개정판이었으나 이번에 자유민주연구원이 입수한 것은 2012년 개정판(북한 법률출판사)이다.

자유민주연구원은 최신판 북한 형사소송법 입수를 계기로 지난 7월 9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 자유민주연구원에서 유동열 원장과 북한 법 전문가인 이백규 변호사(김앤장 로펌),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인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 등이 모여 북한에서 형사소송법이 갖는 위상과 의미에 대해 논의했다.

이들 전문가에 따르면 2012년 개정 북한 형사소송법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군수(軍需)재판소의 설치다. 북한은 일반재판소 외에 특별재판소라는 것을 두고 있다. 사건이 중첩될 때 일반재판소보다 특수재판소의 관할권이 앞서는데, 지금까지 특수재판소는 군사재판소와 철도 관련 범죄를 다루는 철도재판소만 있었다. 그런데 2012년 개정판에 군수재판소를 추가했다.

이에 따라 형사소송법 91조에는 사건 중첩 시 군사재판소, 군수재판소, 철도재판소, 일반재판소 순서로 우선권을 갖는다고 명시돼 있다. 이백규 변호사는 “군수재판소는 군수공급 부문의 종업원이 저지른 범죄사건, 군수공급 부문 사업을 침해한 범죄사건을 관할하는 특별재판소”라며 “2009년에 헌법을 개정하면서 선군(先軍)사상, 군 지휘부를 앞세우는 그들의 이념을 나타내기 위해 설치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장은 “북한에서는 군수물자를 일반물자보다 더욱 심도있고 강한 규율로 관리한다”며 “내가 무역성에 근무할 때도 군수물자 생산량을 도달하지 못하면 군수재판소가 없던 시기인데도 따로 재판을 했다”고 말했다. 유동열 원장도 “북한의 제2경제라 할 수 있는 군수경제는 일반 인민경제 규모의 절반을 넘어선다”며 “군수경제 속에서 벌어지는 각종 범죄를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군수재판소를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12년판 형사소송법에서 주목할 만한 또 다른 변화는 특별재판소의 1심 재판에 대해 불복한 경우 최고재판소에서 2심 재판을 받도록 규정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특별재판소 중 군사재판소는 2심을 받을 수 없고 철도재판소의 경우만 2심 재판(최고재판소)을 받도록 했으나 이번 개정 형사소송법에는 모든 특별재판소에 2심을 허용했다. 이러한 법 규정은 작년 장성택 사건 재판의 경우 북한 스스로 법을 어겼다는 해석을 가능케 한다.

이백규 변호사는 “장성택이 군인 신분이기 때문에 특별재판소의 일종인 인민군 대장 계급의 군사재판을 받은 것은 재판 관할에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군사재판도 북한 형사소송법이 규정하고 있는 1심 재판이기 때문에 최고재판소에서 상소할 수 있다고 봐야 한다”며 “북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판결 후 판결등본을 받은 날부터 10일 내에 상소장을 내도록 하고 있고 상소가 제기된 판결은 집행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장성택의 경우 판결 직후 집행이 이뤄졌기 때문에 과연 상소의 권리가 제대로 부여됐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일각에서는 장성택 스스로 상소 권리를 포기해서 형이 확정된 게 아니냐는 의견이 있지만 북한 형사소송법에는 우리 형사소송법 같은 상소권의 포기에 대한 규정 자체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에 따르면 북한 형사소송법은 공판 기일 5일 전에 피소자에게 재판기일을 통지하고 검찰의 기소장을 송달하도록 돼 있으나 장성택의 경우 물리적으로 이러한 절차도 지키기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듯 북한에서는 법이 유명무실한 경우가 적지 않다. 법보다는 수령의 지시나 당의 규약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김일성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홍순경 위원장은 “북한에서는 헌법을 포함한 모든 법들이 정비돼 있지만 수령의 지시나 당의 규약이 우선”이라며 “각 기관이 수령에게 제안서를 올려 수령이 수표(서명)하면 바로 집행되는 게 일반적”이라고 말했다. 홍 위원장은 “장성택의 경우도 국가안전보위부가 사형해야 한다는 제의서를 김정은에게 올리고 김정은이 여기에 서명하는 걸로 모든 절차가 끝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유동열 원장은 “북한은 자신들이 정상적인 집단이라는 걸 대외적으로 과시하기 위해 법적 절차를 과시하려는 움직임이 있고 법 개정도 그러한 움직임의 일환”이라며 “하지만 북한에서 최고의 법은 수령의 교시이고 그 다음이 노동당 규약, 헌법, 일반법의 순서”라고 지적했다.

이들 전문가들은 “수령 독재체제를 뒷받침하는 특별기구가 국가보위부 재판소”라고 지적했다. “북한에서 형사재판은 정치적 범죄들을 주로 다룬다. 그래서 북한에는 군수재판소나 군사재판소, 철도재판소 같은 특별재판소 이외에 국가보위부가 재판소를 따로 갖고 있다.

국가보위부가 재판소를 뒀다는 자체가 유일사상 체계나 북한 독재체제를 유지 강화하려는 의도다. 특히 국가보위부에서 하는 재판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한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바로 최종 판결이 된다. 일반 형사소송법에는 이러한 것들이 전혀 규정돼 있지 않다.”(홍순경 위원장)

이백규 변호사도 “북한 형사소송법 규정을 보면 반국가 및 반민족 범죄는 보위부에서 수사 및 예심을 하고 일반 도 재판소에서 재판을 한다고 규정돼 있지만 많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보위부에서 재판까지 하거나 재판도 안 해버리는 경우가 많다”며 “북한 스스로 만든 법과 수사 절차를 지키지 않고 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유동열 원장도 “탈북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보위부재판소는 예심수사에서 처분까지 다 해버린다”며 “형사소송법의 절차가 아니라 수령과 당의 명령으로 직결처분한다”고 강조했다.

제정 당시 구 소련법의 영향을 많이 받은 북한의 형사소송법은 우리와는 다른 특이한 점이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예컨대 처음부터 배심제도를 채택했으며 개인이 기소를 할 수 있는 특이한 조항도 뒀다. 북한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지만 우리와는 역할과 의미가 많이 다르다. 이백규 변호사는 “북한의 변호사라는 직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처럼 피고인의 이익을 위해서 주체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당 정책을 옹호하고 재판부를 위해 협조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2012년 개정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북한에서 인권은 오히려 더 후퇴한 측면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백규 변호사는 “사건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시기가 종전에는 예심을 종결한 다음에 바로 가능했지만 개정 형사소송법에서는 기소된 다음에 열람할 수 있도록 시기가 늦춰졌다”며 “수사기관의 구속기간도 예심단계에서 최장 4개월에서 5개월로 연장됐고 검찰 구속기간도 10일에서 15일로 늘어났다”고 지적했다.

유동열 원장은 “북한의 형사소송법 운용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우리의 형사소송법은 피의자 접견 무제한 허용 등 안보수사를 과도하게 제약하는 측면도 있다”며 “안보사범에 대한 강력한 규정을 두고 있는 미국 등 선진국의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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