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 7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상에게 전화를 걸어 "(아베 신조) 총리가 방북할 경우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와 관련한 한·미·일 공조가 흐트러질 수 있다"며 "방북할 경우에는 충분히 협의하길 바란다"고 했다. 또 일본 정부의 대북(對北) 제재 해제에 대해서도 불쾌감을 표명하고 추가 해제에는 신중을 기해달라는 뜻도 전달했다고 한다.

아베 정권은 동북아 고립 탈피를 위해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이유로 북한에 접근했다. 작년에 총리 특보가 방북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북·일 비밀 접촉을 통해 '납치자 특별 조사'와 '제재 해제'를 맞바꾸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기시다 외상은 "아베 총리의 방북도 선택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라고 공개 발언했고 지난 4일에는 조총련계 자금의 송금 보고 의무제 폐지 등 세 가지 대북 제재를 해제했다.

한국과 미국 정부는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북·일 교섭에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혀 왔다. 그러나 동시에 핵개발과 미사일 발사를 하고 있는 북한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해왔다. 특히 일본은 북한과의 교섭을 무슨 비밀작전 하듯이 불투명하게 진행함으로써 국제사회의 우려를 키웠다. 한·미 전문가들 사이에 북·일 간 정상회담과 경제 지원을 포함한 이면 합의설이 널리 퍼진 것은 이런 불투명성 때문이다.

일본이 자국민 납치 문제에 대해 해결을 추진하고 있는 것을 뭐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아베 정권은 북한 카드를 이용해 한·중에 시위하고 압력을 가하려는 의도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이고 있다. 미국조차 이런 상황은 묵과할 수 없었던 듯하다. 기시다 외상은 케리 장관에게 아베 총리가 방북할 계획이 없고, 제재의 추가 해제도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해명했다. 곧 미국을 방문해 추가 해명을 할 예정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이것으로 아베의 폭주가 중단될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한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무력화해서 얻는 이득도 없고 그럴 힘도 없다. 문제는 북한에 국제사회의 단합에 틈을 만들 수 있다는 헛된 꿈을 계속 꾸게 만드는 것이고, 한·중과의 갈등에서 북한이라는 위험한 카드를 쓰려고 작정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미국 아시아 전략의 핵심 거점이다. 케리 장관의 대일(對日) 경고는 그런 미국 입장에서도 아베의 북한 카드는 용인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베는 미국의 눈치는 보겠지만 북한 카드를 접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아베는 지난 15일에도 주일미군이 한반도 유사시 일본의 양해 없이는 출동할 수 없다고 말했다. 말할 필요도 없는 말을 굳이 하면서 우리를 자극하는 태도에서 반한(反韓) 감정이 그대로 드러난다. 아베로 인한 미국의 부담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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