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는 요즘 강원도 원산 인근에 머물며 육·해·공군 합동 훈련을 직접 독려하고 있다고 한다. 김은 "조국의 서남전선해역(서해 NLL 일대)은 적들 때문에 때 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단단히 벼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은 최근 대남(對南) 대화 제의도 이어가고 있다. 북은 7일 발표한 '공화국 정부 성명'에서 오는 9월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과 함께 응원단을 파견하겠다고 밝혔다. 공화국 정부 성명은 북이 발표하는 최고 수준의 성명이다. 2012년 초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이런 형식의 성명을 발표한 것은 처음이다. 북은 이미 지난 5월 말 인천 아시안게임에 선수단을 파견하겠다고 발표했다. 북의 새 제안은 응원단을 추가로 보내겠다는 정도지만 이것을 1970년대 이후 10여 차례밖에 쓰지 않았던 '공화국 정부 성명'이라는 거창한 이름으로 내놨다.

북의 속내는 응원단 파견에 이어서 밝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한 4개 요구 사항에 들어 있다. 북은 성명에서 "외세 의존을 반대하고 모든 문제를 우리 민족끼리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의 핵무기는 "우리 민족의 평화와 번영을 보장하게 될 것"이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리 민족끼리'는 북의 상투적 선전 문구이지만 지금 시점에선 여기에 북의 절박한 심정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다. 과거의 우리 민족끼리는 한·미 동맹 훼손을 겨냥한 선동책이었다면 지금은 급속히 가까워진 한·중(韓中) 관계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의 방한을 전후해 중국은 모든 공식 석상에서 대한민국을 '가까운 친척'으로 부르고 있다. 시 주석 부부는 서울 곳곳을 다니며 한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중국이 이러는 주된 이유는 한·중 간 대(對)일본 공동 전선을 만들기 위해서다. 그러나 북한 역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은 지난 반세기 북의 유일한 후원국이자 혈맹국이었다. 중국의 식량·원유 지원 없이는 북은 체제의 생존을 기약하기도 힘든 처지다. 이런 중국이 대놓고 한국과 손을 잡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북 정권으로선 다른 어느 때보다 체제에 대한 위기감, 중국에 대한 분노가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런 북이 같은 날 대남 도발용 군사훈련을 하면서 '우리 민족끼리 대화하자'는 제안을 내놓고 있다. 이런 막다른 처지에 내몰리면 언제, 무슨 일을 저지를지 예측하기 어렵다. 정부는 북의 응원단 파견은 받아들이면서도 남북 대화 요구에 대해선 '진정성이 없다'며 유보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상황에서 정부의 제1 과제는 북의 모든 도발 가능성에 철저히 대비하는 일이다. 이와 함께 지난 2월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 후 사실상 끊어진 남북 대화를 되살릴 방안에 대해 고민할 때다. 북한으로 하여금 지금의 외교적 고립을 벗어나려면 북·일 관계가 아니라 남북 대화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북은 괜한 변죽을 울릴 게 아니라 진지한 자세로 남북 대화에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북은 대화를 얘기하기에 앞서 군사 도발 움직임부터 즉각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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