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지해범 동북아시아연구소장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한국인들에게 좋은 점수를 얻고 있다. 3일 아침 조선일보에 실린 '순풍에 돛을 달자'란 제목의 시 주석 기고문을 본 블로그 친구는 '어쩐지 시 주석은 인상도 좋고 믿음직해 보인다'는 댓글을 내 블로그에 달았다. 언론계 동료들은 "아시아의 다른 지도자보다 배포가 있고 사려가 깊은 것 같다" "누구처럼 뒤통수 칠 인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중국 '제1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도 이틀 동안 한국인에게 따뜻하고 세련된 인상을 심어주었다.

시 주석은 4일 서울대 강연에서 "이웃집 친구를 만나러 왔다"고 했다. 하루 전 조선일보 기고문에서도 "양국이 서로 친척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교류를 강화하자"고 제안했다. '친구'나 '친척'이란 단어는 시 주석이 그만큼 한국을 편하고 가깝게 여긴다는 표시일 것이다. 한국인들은 시 주석의 이런 표현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우려를 떨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중국이 세계 전략을 펴 가는 데 한국을 끌어들여 순응하도록 하기 위한 '포용전략'의 일환이 아닌가 걱정하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방한을 맞아 한국인들이 바라는 것은 중국이 '친척'이기 전에 '진정한 친구'가 되는 것이다. 친구란 시 주석이 인용한 '무신불립(無信不立)'이란 용어처럼 서로 신뢰하고 존중할 때 지속된다. 상대가 무슨 의도를 가졌는지 의구심이 들거나 한쪽이 다른 쪽을 존중하지 않고 윽박지를 때 친구관계는 지속될 수 없다. 시 주석 역시 서울대 강연에서 "이익을 보고 친구를 사귀면 관계가 금방 깨지고, 서로 마음을 보고 사귀면 우정이 오래간다"고 했다.

한·중 관계는 단순한 양국 관계를 넘어 중국이 세계 대국으로 도약하는 데 상징적인 의미를 가진다. 중국은 시진핑 정부 출범 후 종합 국력에 걸맞은 '대국(大國)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대국 외교의 두 축은 '신형 대국 관계'와 '주변국 외교'다. '신형 대국 관계'는 미·중 양국이 상대의 핵심 이익을 존중하고 협력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은 적어도 군사안보 면에서는 중국과 협력할 뜻이 없다. 중국은 일본·베트남·필리핀 등과의 영토·영해분쟁으로 '주변국 외교'에서도 장애물을 만났다. 거기에다 일본의 아베 총리는 핵 노선에 매진하는 북한 김정은의 손을 잡아 중국의 대북 영향력을 약화시키려 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의 친구'라고 할 만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따라서 한·중 관계는 중국 주변국 외교의 모델이자 시진핑 대국 외교의 시금석이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중국이 국익에 유리할 때는 웃는 낯으로 대하다가 국익에 손해가 될 때 얼굴을 바꿀까 두려워한다. 또 21세기 아시아에서 중국이 '조공 관계' 같은 봉건적 국제질서의 회복을 꿈꿀까 우려한다. 중국이 대국이 되었다고 해서 주변국을 힘으로 누르거나 돈으로 마음을 사려 한다면 우정은 오래갈 수 없고 대국 외교도 성공하기 어렵다.

시 주석은 서울대에서 "중국은 겸허하게 상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국제규칙을 준수하며, 평등을 중시하고, 공동 발전을 도모하며, 한반도의 자주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다. 한국인들은 이 약속이 말뿐 아니라 행동으로 증명되길 기대한다. 중국이 한국과 '진정한 친구'가 될 때 세계도 중국을 신뢰하게 될 것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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