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서울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주석 간의 한·중 정상회담은 부쩍 가까워진 양국 관계를 새삼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작년 초 취임 후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시 주석과 다섯 번 만났다"며 "회담을 거듭할수록 신뢰가 더욱 깊어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 역시 이번 방한을 최고 수준의 외교 행사로 치르기로 작심한 듯했다. 시 주석은 이번에 국가주석 취임 후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찾은 최초의 중국 최고 지도자로 기록됐다. 부인 펑리위안(彭麗媛) 여사와 부총리급 3명, 장관급 4명, 세계 최대의 전자 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과 중국 최대 인터넷 검색 엔진 '바이두'의 리옌훙 회장 등 200여명의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함께 한국을 찾았다. 상대국에 대한 중국의 호의(好意)를 상징하는 판다 한 쌍도 한국에 보내기로 했다. 시 주석은 방한에 앞서 조선일보 등에 보낸 특별 기고에서 "한·중은 서로 친척집을 드나드는 것처럼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며 "두 나라는 한배에 타고 강을 건너고 있다"고 했다. 전 세계가 다 들으라고 한국에 대한 친밀감을 과시한 셈이다.

박 대통령은 회견에서 "시 주석과 북한의 비핵화를 반드시 실현하고 핵실험에 결연히 반대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시 주석은 끝내 '북한의 비핵화와 북의 핵실험 반대'라는 말을 쓰지 않았다. 대신 작년 6월 박 대통령이 중국을 찾았을 때부터 줄곧 사용해온 '한반도 비핵화'라는 표현을 되풀이했고, 6자 회담을 통한 한반도 비핵화 실현이라는 중국의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시 주석이 평양보다 서울을 먼저 찾아 한·중 정상 간 신뢰와 우의(友誼)를 강조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는 엄청난 압박이 될 것이다. 실제 북은 시 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연거푸 로켓을 발사했다. 북은 현재 중국에 대한 배신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북이 순순히 핵을 포기할 리 없다. 북한 관영 노동신문은 며칠 전 "핵 포기는 영원히 실현될 수 없는 허황한 개꿈"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이 유일한 북핵 해법으로 거론하는 6자 회담 역시 지난 몇 년간 동력(動力)을 잃은 채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북핵 문제에 처한 지금의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새로운 해결 방안을 찾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시 주석은 회견에서 '지역과 세계무대에서의 한·중 동반자 관계'를 거듭 강조했다. 대부분의 시간을 여기에 할애했다. 시 주석이 이번 방한을 성대하게 치르기로 작정한 것도 이 문제와 깊은 관계가 있을 것이다. 중국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대(對)중국 포위망을 짜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의심을 버리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한국이 미국·일본 쪽으로 급속히 기우는 것을 원치 않는다. 한국은 점차 이 문제에서 균형추 같은 존재가 돼가고 있다. 한국의 선택이 경우에 따라선 중국의 엄청난 반발을 부를 수도 있다는 점이 이번 시 주석 방한을 통해 다시 한 번 확인됐다.

한·중이 동북아와 아시아, 세계 평화를 위해 협력하는 동반자가 되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한·중 글로벌 동반자 관계는 화려한 외교 이벤트나 수사(修辭)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무엇보다 북핵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중국은 근본적 한계를 드러낸 기존 북핵 해법만 고집할 게 아니라 북한 문제에 관한 한·중 논의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에 대해 고민할 때가 됐다. 이제 한·중 관계는 두 나라만의 문제를 넘어섰다. 정부는 한·중 관계를 내실화하고 강화하면서도 동북아와 세계 질서 차원에서 접근하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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