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와주는 척하다가 뒤통수 치는 나라,
미국이 시키는 대로한다'는 일본관은 편견
日-北 국교 정상화는 한반도 통일에 악영향
수교 가능성 차단하고 대북공조 재점검해야

선우정 국제부장[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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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의 '뒤통수를 치는 나라'로 종종 인식된다. 경술국치(庚戌國恥)와 같은 엄청난 일만이 아니다. 광복 후 일본의 소련·중공 수교는 반공(反共) 최전선에서 싸우는 한국을 배신한 처사로 한국 정부의 비판을 받았다.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 때도 일본은 도와주는 척하다가 돈을 빼간 '뒤통수꾼'으로 낙인찍혔다.

'뒤통수론(論)'은 편리한 논법이다. 실패 원인을 상대방에게 전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사건엔 수많은 요인이 존재하고, 거기엔 자기 실수도 개입되게 마련이다. 하지만 한국의 대일 관계에선 '뒤통수' 한마디로 간단히 정리된다. 이런 경향은 역사 학습 효과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때문에 우리의 '대일(對日) 실패학'은 일면(一面) 탐구에 머물러 전체 윤곽을 파악하지 못한다. 그러다가 다시 뒤통수를 맞는다. 뒤통수론은 편리한 논법이지만, 그 편리함이 요구하는 비용은 장기적으로 거대하다.

얼마 전 우리 언론에 '일본이 뒤통수를 쳤다'는 말이 다시 나왔다. 일본이 북한과 동시에 발표한 '일본인 납치 문제 재조사 합의' 때였다. 국가라면 당연히 할 일을 한 것인데 그런 말이 나온 건 이유가 있다. 일본이 우리와 협의 없이 '대북 제재 완화' '국교 정상화' 문구를 합의문에 넣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동북아 안보 동맹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다.

이번 문제는 과거 뒤통수론처럼 책임을 일본에 돌리고 편리하게 넘길 일은 아니다. 특히 북·일 국교 정상화는 한반도 통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문제다. 일본이 지불하는 과거사 배상금은 김정은 정권을 연명시키고, 일본이 반대급부로 확보하는 북한에 대한 독자적 발언권은 한반도 통일에 장애가 될지언정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가 바라는 건 정반대다. 배상금은 통일 한국이 받아 북한 지역을 부흥시키는 종잣돈으로 사용해야 하며, 일본의 한반도 발언권은 한·미 동맹의 틀 안에 묶어야 한다.

북·일은 과거 두 차례 수교 교섭에서 과거사 사죄 문구와 배상 방식까지 논의한 적이 있었다. 평양 선언이 나온 2002년, 한국이 크게 반발하지 않은 것은 당시 정부가 북한을 돕는 것을 정책의 우선순위에 뒀기 때문이었다. 지금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가 통일에 있다면 우리는 쌍심지를 켜고 북·일 수교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동분서주해야 한다.

우리가 일본에 대해 가진 또 다른 편견은 일본을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하는 나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은 놀랄 정도로 광범위해 북·일 합의 발표 후 우리 외교 당국자도 '일본의 대북 정책이 미국의 핵 정책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과거 소련·중공과 수교한 과정을 보면 전혀 다른 일본을 발견한다. 상대방의 위협이 동맹의 능력을 넘어서거나 외교 지형의 격변에서 자신이 소외된다고 판단했을 때 일본은 서슴없이 홀로 움직였다. 일본 학계가 전후(戰後)를 관통하는 일본의 외교 철학을 '무(無)가치'라고 말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일본에 친미(親美)는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일 뿐 목표가 아니다.

일본은 북한 수교 카드를 왜 지금 만지작거리는 것일까. 북한이 일본에 실질적 위협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동맹이 위협을 제거하지 못하면 독자 노선을 모색하는 것이 당연한 외교라는 것도 우리는 종종 간과한다. 상대가 편견의 대상인 일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본이 북한 수교에 첫발조차 내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동시에 '한·미·일 대북 공조'에서 일본을 소외시키지 않았는지, 그래서 상대를 초조하게 하지 않았는지 재점검해야 한다. 친중(親中)은 반일(反日)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는 원칙도 재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통일을 위한 길이다.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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