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방문하여 한국의 노동부와 여당이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 도입을 추진한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서유럽 국가 중 가장 많은 외국인 근로자를 보유하고 있고 외국인력 수입의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독일의 경험이 혹시 한국에 참고가 될까 하여 붓을 들었다.

독일은 2차대전 후 경제부흥이 가속화하면서 1960년대 초부터 산업체에 심각한 인력난을 겪게 되었다. 전쟁으로 성인남자의 수가 격감한 데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인한 제조업의 급성장이 인력수요를 증가시킨 때문이었다. 이에 따라 터키, 유고, 이탈리아 등에서 대거 유입된 외국인 근로자들은 대규모 토목사업, 광업, 단순 제조업 분야에 종사하면서 서독의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서독은 1973년 오일쇼크 여파로 경제가 침체되어 외국인 근로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모집 중단’ 조치를 취할 때까지 약 1400만명의 외국인 노동력을 받아들였다. 처음 서독은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이되 ‘순환원칙’ 을 채택하여 외국인 근로자들이 한시적으로 근무하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귀국시키는 정책을 견지하였다. 그러나 외국인 근로자들의 독일 체류는 계획보다 장기화되었다. 고임금 국가인 독일에 더 체류하려는 근로자의 입장과 적응이 잘된 근로자를 계속 쓰고 싶어하는 고용주의 입장이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외국인 노동자의 60%는 귀국하지 않고 가족과 함께 서독에 남아 사실상 이민자가 되었다. 이민을 받아들이지 않는 정책을 취하고 있는 독일로서는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서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독일경제가 성장을 멈추고 실업자가 대량으로 발생하자 200여만명에 달하는 실업자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아 갔다는 일부의 선동에 자극되어 ‘외국인 혐오’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하였다.

세계화시대를 맞이하여 외국인 근로자가 국경을 넘어 모집·선발·이동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느 나라든 국가경제의 규모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의 수는 감내할 수 있는 일정한 범위 내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민을 받아들이는 미국도 해외로부터 고급두뇌는 받아들이지만 통상적인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범용적 인력의 유입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보호 문제는 반드시 지켜야 할 국제적인 규약이다.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은 고용형태와 상관없이 보호되어야 하며 한국정부는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하지만 불법체류의 문제는 인권문제와는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져야 한다. 인권침해 사례가 있다고 해서 외국인 근로자에게 ‘고용허가제’를 통해 내국인과 동일한 법적지위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 1년 단위로 고용계약을 하는 계약직 형태로 운용한다고 하는데, 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고용기간에 제한을 가한다고 해도 증가하는 외국인 근로자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렵다.

스위스는 현재 외국인 근로자를 출신국가별로 엄격한 정원제로 관리하고 있으며, 빈자리가 생긴 만큼만 해당국가의 근로자를 받고 있다. 불법체류에 대한 단속과 제재도 매우 엄격하다.

한국도 합법체류와 불법체류를 엄격히 구분·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 외국인력 유입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적 장치가 미처 확보되기 전에 외국인 근로자 고용허가제가 섣불리 도입될 경우 한국도 언젠가 독일이 겪었던 것처럼 원치 않는 대량이민 유입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은 현행 ‘연수취업제도’의 불합리한 점을 보완하면서 국내 노동시장의 여건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의 유입을 총량적으로 통제하는 한편으로 순환원칙을 견지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남북통일이 되면 북한 주민들이 남쪽의 노동시장에 일시에 대거 진입하여 현재 외국인 근로자가 하고 있는 거의 동일한 일을 떠맡게 될 것을 생각하면 외국인 고용허가제 도입은 앞을 내다보며 좀더 신중히 결정할 필요가 있다.

/ 볼프강 베버 (Wolfgang Weber) 독일 파더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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