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정세현) 전 통일부차관과 서울대 하영선(하영선) 교수의 대담을 통해 제 1차 남북장관급회담의 성과와 과제를 점검해 보았다.

▲정세현=전체적으로 이번 회담은 6·15 남북정상회담과 다음번 분야별 회담의 다리 역할을 그런대로 했다고 본다. 남북 연락사무소 재가동은 회담사적으로 볼때 상당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또 한달후에 같은 회담(장관급 회담)을 평양에서 열기로 한 것은 정례화까지는 아니지만, 2~3번 더 필요가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한 것이다. 2~3번 더 만나 대화의 틀을 제대로 짜야 할 것이다.

▲하영선=6·15공동선언은 말 그대로 선언이었고, 이번이 실천의 첫 발걸음인 장관급회담이었다. 공동보도문 중심으로 들여다 보면, 6·15공동선언문의 틀을 철저히 따르는 것으로 짜여져 있다. 공동선언의1~2항은 근본문제이고 3~4항은 이산가족과 경협의 실무적 문제이며, 마지막은 당국자회의 문제였다. 6·15선언 후 한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으니, 이번 회담은 초기 점검을 할 수 있는 조그만 잣대가 될 것이다. 이번에 ‘남북공동선언 정신에 부합되게 운영한다’고 한 것은 공동선언의 1~2항에 해당되는 것으로 따져봐야 할 부분이 남아 있다. 자주 평화 통일만을 6·15선언의 기본정신으로 잡는다면 일부에서 불만이 있는대로 긴장완화, 평화정착 정신이 언어적으로 조금 덜 표현된 것 아니냐는 아쉬움이 있었다. 또 하나 문제는 북한이 자주통일이라는 면을 21세기적으로 신해석을 했는가에 이견이 있을 수 있다. 21세기에는 세계화와 자주는 이분법적 구분이 아니라 동시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까지 진보적인 자주개념에 남북이 동의했는지는 지금도 숙제로 남아 있다.

▲정=자주 문제는 21세기적으로 재해석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번 정상회담 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문명자씨와의 인터뷰에서 주한미군에 대해 북한 최고 당국자로는 확실하게 주한미군을 장차 용인하는 쪽으로, 평화의 조정자로 얘기를 했다. 역할과 지위변경 얘기가 남아있기는 하지만 파격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미국 일본과 가까운 관계이면서 중·러와 관계를 개선해 나가듯이, 중·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 북한도 미국 일본과 공존 화해협력하는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통일이라고 하는 면도 통일 반통일 논쟁도 있고, 조선일보와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문제도 있었지만, 21세기적 의미는 하나로 통하는 세계가 아니고 모든 것에 통하는 세계라는 의미이다. 그런 의미에서 21세기는 일통(일통)이 아니라 모든 것으로 통하는, 전문적으로 말하면 통일론을 넘어 복합론이 등장할 시기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공동정신이 21세기에 진정한 의미의 진보에 맞게 점진적으로 해석될 수 있게 남북이 노력해야 하고 그것이 가능한지 여부가 앞으로 남북관계의 효율적인 전개에서 중요한 부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통일 문제도 합의는 안됐으나 그런 방향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고 잡혀 있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다. 북한도 과거 통일 개념에 집착하지 않는 상태가 되지 않았느냐, 2개 정부 2개 국가가 존재하는 조건 위에서 분단의 고통을 어느 정도 경감시킬 수 있는, 세계화와 어느 정도 연결되는 통일 개념에 대해 지금 지도자들은 그런 식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21세기 중심되는 세대들은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쪽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조총련 동포들의 고향방문은 조총련에서 북한에 강력히 희망한 것을 처리해 준 것 같다. 크게 보아서 의미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경의선 철도는 지난 번에 얘기가 나온 것이 실천에 옮겨지는 것이다. 20여km만 연결하면 되므로 어려움 없이 끝낼 수 있다. 사실 이후에 복선화를 해야 경제성이 있는데 돈이 많이 들어간다. 이것은 김일성(김일성)의 일종의 유훈사업이다. 김일성 주석은 94년 경의선 철도를 연결만 하면 통과료로 4억달러가 들어오고, 시베리아까지 연결하면 10억달러가 나온다고 말했다.

▲하=8·15 때 남북과 해외가 6·15지지 행사를 어떤 식으로 치를 수 있는지가 궁금하다. 이는 또다시 남북공동선언의 기본정신 해석 문제로 돌아갈 것으로 본다.

▲정=북쪽은 범민족 행사 연장선상에서 하겠지만 행사 주관을 누가 하는지 모르겠다. 남쪽은 민화협이 있다. 민화협에 범민련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우리 쪽에서 일어난다. 북한이 범민련 이름을 쓰지 않고 민화협 이름으로만 나와주면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하=남북공동행사도 행사가 반복되면서 공동정신의 성격이 구체화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첫번 행사가 어떻게 균형감을 갖고, 남과 북과 해외에서 하는 것이 기본정신의 균형적인 해석에 기반을 두고 어떤 식으로 진행돼 갈 것인지가 관심이다.

▲정=행사의 내용이 문제가 되는 경우는 공동선언 1항과 2항의 내용에 대한 해석이 현격한 차이가 날 경우이다. 그러나 북한이 새로운 해석을 했다면 자주나 연방 그런 용어가 나왔다 할지라도 큰 문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에 관한 조항이 6·15공동선언 때부터 빠졌다고 많은 사람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나 소위 군사적 신뢰 구축은 정치적 신뢰가 구축된 후에 이뤄질 수 있는 것이고, 그 후에야 군비통제, 군축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하=가장 초보적인 차원에서나마 군사적 신뢰 구축에 대한 논의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을 것이다. 그동안 남북대화 과정에서 비군사적 차원의 신뢰 구축 성과가 한계를 보이는 측면이 많기 때문에 정치적·군사적 신뢰 구축에서 진척을 보아야 일이 잘 진전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앞으로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남북관계에 레일을 까는 중요한 일이므로 우리 내부적으로 자제하고 다녀갈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해 줘야 한다.

▲하=남북관계 진전을 이루기 위해 첫째 우리 내부의 합의를 이뤄야 한다. 통일 반통일, 친미 반미라는 나누기는 구태의연하고 국내적인 잣대로만 얘기하기에는 이미 세월이 한참 지났다는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미국에 대해 예스(yes)냐 노(no)냐를 따질 것이 아니라 예스와 노를 동시에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남북간의 합의기반을 확충하는 것이다. 남북관계는 기본정신에서 아직도 많은 조율이 필요하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향한 점진적인 자세를 쌍방이 보일 때에만 실천적인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자세 없이 이미 다 합의됐다는 식의, 둥둥 떠다니는 듯한 사고를 가지면 성과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셋째는 국제적인 합의기반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국제문제도 생각보다는 간단하지 않다. 6·15이후 미 국무부 정오 브리핑을 매일 자세히 보라. 미국의 아주 묘한 입장을 읽을 수 있다. 일차적으로 한미간의 조정이 중요하고, 그후 중국·러시아 관계가 있다.

▲정=더 큰 문제는 우리 내부 분위기다. 남북관계를 정상화시키는 데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은 필수적인 문제인데 우리 내부문제 때문에 약속 이행이 늦어지게 한다면, 그것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정리=김민철기자 mckim@chosun.com

/김덕한기자 duck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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