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시아에 정치·경제 관심 확대
中, 안보 협력 기구 제안하며 반격
韓, 미·중 틈새서 능동 대처하고 북한 뛰어넘어 중·러와 협력하며
한·미 동맹 위에서 전략 구사해야 한반도 통일 방정식 풀 수 있어

김성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김성한 고려대 일민국제관계연구원장·前 외교부 차관
중동에 대한 과도한 개입을 줄이고 아시아에 대한 정치·경제적 관심을 확대하겠다는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toward Asia)' 전략은 동맹(同盟)·동남아·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란 세 단어로 요약된다. 미국은 한국·일본·호주 등과 동맹 체제를 재정립하고, 필리핀·베트남·인도네시아 등과 맺은 양자 관계를 활용해 동남아에 대한 전략적 유대를 복원하며, TPP를 통해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미국 주도의 자유무역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대한 중국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5월 21일 제4차 '아시아 교류 및 신뢰 구축 회의(CICA)' 개막 연설에서 CICA를 아시아 지역 안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안보 협력 기구로 만들자고 공식 제안했다. 중국이 2014~16년 CICA 의장국을 맡게 된 것을 계기로 시(習) 주석은 "제3국을 겨냥해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것은 공동 안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여 미국에 일침을 놓은 뒤 "우리는 모두 아시아의 한 가족으로서 협력 안보(cooperative security)를 실천해 나가야 하며, CICA 사무국을 강화하여 테러·경제·환경·인문 등 다양한 영역에서 실질적 협력을 이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ICA를 단순한 지역 안보 협의체가 아니라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처럼 아시아 안보 협력 기구로 개편해 가겠다는 것이다.

중국이 자신이 창설하지 않은 다자 기구인 CICA를 등에 업고 새로운 전략적 구상을 실현하려는 것 자체가 흥미롭다. 중국은 동쪽에 있는 CICA 회원국(한국·베트남·캄보디아·태국)과 옵서버국(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필리핀)을 한 축으로 하고, 서쪽에 있는 회원국(중앙아시아·터키·이라크·이란·이집트·팔레스타인·요르단·바레인)을 다른 한 축으로 하고서 동서 양쪽에 걸쳐 있는 러시아를 활용해 자국의 세력권을 확대해 가는 '유라시아 양 날개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이 중동에서 한발 뺀 틈을 공략함과 동시에 최근 미·중 사이에서 눈치를 보는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국의 품속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작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중동에 대한 기득권 수호, 서태평양 지역에 대한 군사력 재배치,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개입 확대로 대표되는 미국의 '재반격'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중국의 '유라시아 양 날개 전략'의 성공 여부는 불투명하다. 하지만 CICA 연설 시 부각된 시진핑 주석의 비장한 표정에서 향후 중국의 적극적 행보를 예상할 수 있다. 미국과 중국 틈새에서 '북한 문제(North Korean question)'를 해결하고 외교적 지평을 넓혀가야 하는 한국으로선 냉소적 대응을 넘어 능동적으로 대처해가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 권력 지도가 중·러 대 미·일로 양분(兩分)되는 건 우리 외교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유동적 환경 속에서 한국으로선 미국의 국제 정치적 비중과 운용 전략을 정확히 읽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미국의 패권적 지위에 도전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행간(行間) 읽기가 매우 중요하다. 전·현직 정부 관계자, 중국 전문가, 국제정치학자들 간의 솔직하고 진지한 토의가 필요하다. 우리도 이젠 국가 전략 개발을 위한 전략 커뮤티니를 구성해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민(民)과 관(官)이 힘을 합쳐야 한다.

그러한 가운데 중국의 동쪽뿐만 아니라 서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중국의 '유라시아 양 날개 전략'은 북한의 참여 없이 가동된다. 마찬가지로 우리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역시 북한 문제가 진전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북한을 뛰어넘어 중국·러시아 등과 협력해가야 한다. 이미 제시된 시진핑의 '신(新)실크로드 프로젝트'나 푸틴의 '유라시아 경제연합'에 의해 박근혜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가 견제당하지 않기 위해선 향후 중국이 주도하는 CICA 프로세스를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과정에서 동북아에 다자(多者) 안보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한국의 동북아평화협력구상(NAPCI)이 중국이 주도하는 CICA와 상충되지 않는다는 점을 설득해 NAPCI 실현을 앞당길 수 있다. 중국이 CICA를 강화하기 시작했다고 NAPCI가 약화될 것으로 걱정하기보다 동북아에 초점을 맞춘 NAPCI가 제도적으로 정착될 경우 미·중 양측 모두에 득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작업이 한국의 생각대로 전개될 수 있기 위해선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지속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선결 요건이다.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하면서 확고한 한·미 동맹 위에 다양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반도 통일 대업(大業)을 이룩하기 위한 복잡한 방정식도 풀어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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