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처와 두 자녀를 남겨두고 월남한 뒤 재혼,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은 한 실향민이 “북의 가족에게 줄 재산을 재혼한 뒤 얻은 자식들이 가로챘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 실향민과 함께 월남한 자식들은 지난해 10월 북에서 생존이 확인된 형제와 어머니로부터, 앞으로 위임장을 받아 배다른 형제와 계모를 상대로 혼인무효와 친자관계 존재확인 소송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성사될 경우 북한 주민이 원고가 되는 첫 재판이 될 이 소송은 향후 이산가족 상봉에 따른 법적 분쟁의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여 결과가 주목된다. 그러나 북에서의 결혼관계를 증명받기 위해서는 북한 당국의 확인서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만약 북한이 이를 허락해 북의 주민이 남한 법정의 원고가 될 경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체를 스스로 부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허용해줄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에서 결혼해 3남2녀를 둔 S씨는 한국전쟁 중 장남과 차남을 데리고 월남, 현재의 부인과 결혼한 뒤 함께 월남한 두 아들을 호적에 올렸고, 새 부인과의 사이에서도 두 아들을 얻었다.

S씨는 남에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모았지만 남에서 재혼한 부인과의 불화로 이혼소송을 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은 끝에 지난해 노인성 치매에 걸렸다. 그러자 남에서 얻은 아들들이 지난해 S씨로부터 물려받았다며 30억원대의 재산에 대해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으며, S씨는 즉각 친동생을 대리인으로 지정, “내 뜻과 다른 소유권이전은 무효”라며 지난 5월 서울지법에 소송을 냈다.

그러나 그후 S씨는 이달 초 86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S씨는 평소 친지들에게 “자식들에게 물려줄 재산은 이미 나눠줬기 때문에 나머지 60억원대의 재산 중 절반은 북의 가족들에게, 절반은 사회에 환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가족들은 말했다.

S씨측 배금자(배금자) 변호사는 “북의 처자식의 생존이 확인된 이상, 남한에서의 부부관계는 현행법상 금지된 사실상의 중혼(중혼)이므로 남에서의 재혼은 무효”라며, “상속재산을 되찾는 민사소송과 함께 장남이 직접 방북하거나 제3국을 거치는 방식으로 생존이 확인된 북의 가족들에게 위임장을 받아 혼인무효소송도 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우상기자 imagine@chosun.com
저작권자 © 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