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최근 북한에서 남한 드라마를 시청한 주민 6명이 또다시 공개처형을 당했다. 북한에서 남한드라마를 본 사람들을 공개처형하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남한 드라마를 보는 이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요즘 북한주민들 사이에서는 남한 드라마를 모르면 촌사람 취급을 당한다. 남한의 최신가요를 남한사람보다 더 잘 부른다는 말도 나온다. 가끔 전화로 북한 지인과 통화를 하면 남한의 최신가요를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단둥(丹東) 등 북·중 접경 도시에는 친척 방문이나 출장, 인력 수출 등으로 나와 있는 북한 주민들이 많다. 이들은 중국에 나왔다가 북한으로 돌아갈 때 남한 드라마나 포르노물이 담긴 CD를 구해서 몰래 들고 들어간다. 북한 신세대들 사이에서는 남한의 포르노물을 많이 볼수록 자신이 상류층, 고위층에 속한다는 인식도 널리 퍼져 있다.

중국에 체류할 때는 현지에서 방송되는 한국 뉴스나 토크쇼 등을 즐겨 본다. 예전에는 KBS, MBC, SBS 등을 자주 봤지만 요즘은 공중파 3사의 프로그램이 너무 심심하고 재미없다고 종편채널을 선호한다고 한다. 북한 관련뉴스는 종편채널이 가장 재미있다는 것이다.

특히 탈북자들이 자주 출연하는 TV조선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이 방송을 보는 북한 고위층이나 보위부 요원들의 반응이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도 북한에서 많은 교육을 받고 충성 맹세까지 한 사람들이라 처음에는 탈북자들의 거침없는 발언에 화가 나서 얼굴이 벌개진다고 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그 내용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 들어가 박장대소하며 배를 그러쥐고 웃다가 나중에는 자신도 모르게 시원해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북한의 선전선동에 세뇌가 되어서 처음에는 북한에 대한 비판과 진실을 접할 때 버럭 화를 내고 거부하지만 듣다보면 실제로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깨닫고, 자기들이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는 현실을 객관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보위부요원이요, 고위층이요’ 해도 그들도 사람이라 어쩔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들을 대신해 탈북자들이 거침없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고 김일성 일가의 비리와 김정은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는 것을 들으면서 속으로 후련해하고 대리만족을 느낄른지도 모르겠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북한 당국이 남한드라마나 포르노물을 보는 주민을 단속하고 적발되면 총살까지 하지만, 정작 이런 남한드라마와 포르노물을 가장 많이 보고 유통시키는 장본인은 바로 중국에 자주 드나드는 북한 고위층과 보위부요원, 세관원들이라는 점이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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