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에만 비공식 당국 협의 두차례 가진 듯
北, '경제 제재 해제·인권 문제 비판 탈피' 포석 담긴 듯

북한과 일본이 납북자 일본인 문제를 중심으로 하는 당국간 협의를 공식화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결과가 주목된다.

산케이 신문을 비롯한 일본 매체들은 15일 북-일 양측이 지난 12~13일 중국 다롄(大連)에서 과장급 협의를 비밀리에 개최했다고 보도했다.

양측은 이에 앞서 지난 5~6일에도 중국에서 비공개로 과장급 협의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어느 한쪽도 이에 대한 사실확인을 해주고 있지 않다.

비공개 당국 협의는 일본측에서는 두번 모두 오노 게이이치(小野啓一) 일본 외무성 북동아시아과장이 대표로 나선 것으로 알려졌으나 북한측에서는 '과장급 인사'가 나섰다고 알려진 것 외에는 이렇다 할 정보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같은 일본과 북한의 당국 협의는 지난달 4일 양측이 1년7개월여만에 적십자 실무회담을 재개하며 물꼬를 텄다.

양측은 적십자 회담 대표단에 각기 외교 채널 당국자들을 참석시키며 적십자 회담 도중 비공식 접촉을 가져 납북자 일본인 재조사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에도 일본은 오노 게이이치 과장이 참석했으며 북한측에서는 류성일 외무성 일본 과장이 나선 바 있어 최근 진행된 비공개 협의에서도 두 과장이 만났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후 양측은 지난달 10~14일 일정으로 납북 일본인 요코타 메구미씨의 북한 딸과 메구미씨의 부모를 몽골에서 만나게 함으로서 향후 양측 회담의 주 의제가 납북자 일본인 문제가 될 것임을 사실상 분명히했다.

한차례 더 적십자 회담과 비공식 당국 접촉을 가진 양측은 지난달 30~31일에는 공식적으로 당국 회담을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일본측은 납북자 문제에 대한 재조사를 정식으로 북한에 요구했으며 북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전달했다.

당시 북측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구체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으나 일본 언론들은 북한이 지난 2006년 장거리 미사일 '대포동 2호' 발사 후 일본이 북한에 대해 내린 수출입 전면 금지와 전세기 운영금지 등 제재 조치 해제를 재조사의 조건으로 내걸었다고 보도했다.

북한은 또 최근 일본 법원에 의해 경매 매각이 결정된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중앙본부 건물을 조총련이 계속 사용할 것과 2006년 이후 금지된 북한 선박 만경봉 92호(원산-니가타 왕래)의 일본항구 재입항 허용을 요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일본은 조총련 중앙본부 건물 재사용과 만경봉호 재입항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경제 제재의 단계적 해제와 전세기 운항 등에 대해서는 사실상 허용 방침을 굳힌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앞서 산케이 신문은 "일본 정부는 전세기 등 인적 왕래 허용이 수출입 전면 금지 등에 비하면 가벼운 수준으로 제재 해제의 첫 단계로 적합한 수준이라고 판단했다"고 보도해 일본 정부가 북한의 향후 행보에 따라 단계적으로 제재 해제를 검토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북한이 민감한 사안인 납북 일본인 문제의 재조사에 응한 것은 북한 내부적으로 국제사회와의 경제협력의 필요성이 증대되는데 따른 움직임이라는 분석을 제기한다.

북한은 최근 나진-하산 철도사업 등 러시아와의 경협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며 약 10여년간 정체됐던 개성-신의주 고속철도 사업 추진에 대해서도 꾸준히 중국측에 구애를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상당수 전문가들이 지난해 장성택 처형 이후 중국과의 수출입 사업 규모가 축소되거나 일부 채널은 아예 막힌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는 점도 이같은 북한의 움직임에서 주목할 부분이다.

일본이 현재 북한에 걸고 있는 각종 제재조치들도 대부분 경제적 효과와 연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으로서는 납북자 문제라는 예민한 사안을 내주고라도 제재 해제를 얻어내야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최근 유엔의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의 북한 인권 보고서가 유엔에 제출돼 유엔국들이 결의안 채택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북한이 국제사회의 인권문제 제기를 타개하기 위한 방안으로 납북자 일본인 문제를 선택했다는 분석도 힘을 얻고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일본이 메구미씨의 딸을 공개할 정도로 개방적 태도를 보인 것은 납북 일본인 문제를 공론화해도 될 만큼의 대비책을 마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조만간 양측이 당국 협의를 공식화하고 일본인 납북자 재조사 문제 등에 최종 합의할 것으로 보인다는 전망이 일본 언론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반면 이와 관련 미국의 소리(VOA) 방송은 현지시간으로 17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열리는 안전보장이사회 북한 인권 관련 비공식 논의에 일본인 납북자 피해 가족들이 참석해 이와 관련한 설명을 할 예정이라고 밝혀 북-일이 한동안 이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갈 수도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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