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동북아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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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남북한도 서로 호응하고 협력해야 ‘통일대박’이 난다. 북한은 꿈쩍도 않는데 한국에서 아무리 좋은 정책을 내놓은들 성과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제까지 국내 학계의 통일논의는 ‘한국정부가 어떻게 해야 하나’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북한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논의가 미흡했다.

북한은 물론 체제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이상 바깥에서 무엇을 제안하고 요구한다고 해서 순순히 따라오는 나라가 아니다. 선의의 제안도 체제안정을 흔들 수 있다고 의심되면 바깥의 희망과는 정반대로 행동하곤 했다. 세차례 핵실험으로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묵살했고, 개혁개방 주문에 대해서는 그 용어 자체를 쓰지 말라며 반발해왔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독일 드레스덴 제안에 대해서도 북은 오히려 “입부리를 놀리려면 제 코부터 씻으라”며 ‘괴벽한 노처녀’ ‘우물안 개구리’라고 막말을 쏟아냈다. 서해 NLL 부근에 500여발의 포탄을 퍼붓고, 무인정찰기로 청와대 등을 정밀 촬영해 추가 도발을 준비하는 듯한 행태를 보였다.

이런 북한에 대해 무엇을 요구하는 것은 ‘쇠귀에 경읽기’가 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현 시점에서 남북한 통합의 대명제를 위해 북한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에 대해 논의하고, 제안하고, 주문하고, 회유하고, 비판하는 목소리는 필요하다고 본다. 북한이 귀를 막은 것 같지만 실은 다 듣고 있다. 그런 노력을 통해 북한 지도부와 주민들에게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이성적 자각을 불러일으키고, 남북한 통합에 필요한 국제적 환경조성을 위한 문제의식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씨를 뿌리면 언젠가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북한의 생각과 행동을 바꾸려는 노력은 국제사회와 공조할 때 효과를 볼 수 있다. 북이 자발적으로 남과 손을 마주치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국제사회가 나서서 분위기를 만들거나 압박을 가해야 한다. 한국과 주변 4강의 공조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최근 국제환경은 한국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미-일은 아시아 질서의 ‘현상 유지’를 원하는 반면, 중-러는 ‘현상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 4강이 갈등할수록 대북공조는 깨지고 북한에 유리한 상황이 전개된다. 북한은 이 틈을 비집고 ‘냉온탕(冷溫湯)전략’으로 ‘핵 보유국 지위’를 굳히려 하고 있다. 4강 갈등구도는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갈등이 파국으로 치닫는 것도 원치 않는다. 4강은 ‘어떤 계기’를 통해 이 갈등이 완화되고 평화적이고 점진적으로 새 질서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여기서 ‘어떤 계기’가 곧 ‘북한문제’일 수 있다.

북핵은 그 동안 한국과 미국 일본만 겨냥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지만, 중국과 러시아에도 똑같이 위협적이란 인식이 퍼지고 있다. 중국 인민일보가 최근 칼럼에서 “만약 북한이 핵 불포기 노선을 견지할 경우 몇 개의 대국이 유효한 조치를 취해 북한의 계속적인 핵무기 발전계획을 종식시킬 수도 있다(如果,朝鲜坚持不弃核,也许会使得几个大国采取有效措施,终止朝鲜继续发展核武的计划)”고 한 대목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미-중-러 등이 북한 핵시설 폭파까지 논의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만약 4강이 북한 핵위협에 공동 대응하기로 한다면 북핵은 사실상 무력화된다. 한국은 이런 분위기 변화를 잘 파악해야 한다.

경제분야에서도 대북공조가 필요하다. 북한은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압박이 강화되자 일본에 손을 내밀고 있다. 주변국들이 자국 이익만을 위해 ‘단독 플레이’를 할 경우 북한전략에 말려들게 된다. 경제협력 문제에서 앞장서 주변 4강의 공조를 이끌어낼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의 외교적 공간이 여기에 있다. 북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탄생하는 5자 협력기제는 성공적인 6자 회담의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미래에 탄생할 ‘동아시아 평화협력경제공동체’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아시아판 EU, 즉 ‘AU’의 모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를 통해 4강의 대결구도도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

남과 북 사이에 박수소리가 나려면 북도 손을 내밀어야 한다. 북을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한 대내외적 해법 논의가 활발해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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