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2월 태국 방콕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과학기술참사를 지내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홍순경(76)씨. 총 5회로 나눠 정리한 홍씨의 탈출기 가운데 오늘은 그 세번째 이야기다. 지난 회에서 홍씨는 북한 보위부 요원들에게 납치돼 라오스로 끌려가던 중 극적인 차량 전복 사고로 간신히 북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함께 탈출을 시도했던 막내 아들이 북한 요원들에게 아직 잡혀있는 상황에서 홍씨 부부만 태국 경찰의 보호 아래 들어가는데…./편집자 주

외교문제로 비화된 홍씨 사건… 연일 뉴스메이커가 되다

이민국 보호소에서 우리 사건에 대한 본격 조사가 시작됐다. 우리는 태국 언론에 연일 보도된 뉴스메이커였다. 우리는 망명을 희망하는 북한 외교관이었고, 북한은 우리가 범죄자라고 주장하는 형국이었다. 더군다나 우리에게 뒤집어씌운 죄명이 태국과의 쌀거래와 관련이 있으므로 태국 정부로서도 매우 민감한 사안일 수밖에 없었다. 북한과의 외교마찰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태국 정부로서는 정확한 진상 파악이 급선무였다.

지난 1993년 3월11일자 방콕포스트 1면 톱기사에 실린 홍순경씨 사진. 태국 경찰에게 조사를 받기 위해 하고 있다. /책 '만사일생' 중
지난 1993년 3월11일자 방콕포스트 1면 톱기사에 실린 홍순경씨 사진. 태국 경찰에게 조사를 받기 위해 하고 있다. /책 '만사일생' 중

조사를 받으면서 나는 특수경찰 부국장 뜨리또뜨와의 면담을 요청했다. 그가 우리 가족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북한은 사람을 짐짝처럼 박스에 포장하여 방콕 항구에 정박해 있는 북한선박에 싣고 갈 수도 있다. 우리 아들도 그렇게 납치해서 북한으로 데려갈지 모르니, 면밀하게 감시해주시오.”

“알았소. 진상 파악이 거의 다 되었고, 태국정부는 방콕에서 일어나는 북한의 불법 행위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오. 태국 경찰 병력 250명이 북한대사관을 포위하고 대사관을 드나드는 차량에 대해 감시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시오.”

 
 
실제로 태국 당국은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북한의 범죄자라고 해도 태국에서 직접 체포할 수 있는 권한은 없기 때문에, 태국 당국의 협조를 받아야 한다. 국가보위부가 스파이들을 파견해서 불법 납치를 시도했다는 것은 철저하게 태국의 자주권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외교 결례를 넘어서 충격이었던 듯하다. 특히 당시 태국정부의 수반이던 추안 릭파이 총리가 우리 가족의 탈북에 대하여 일일이 보고를 받고 있었으며 북한 대사관의 불법 납치 행각에 대하여 몹시 격분했다고 한다.


생사를 모르던 막내 아들의 행방을 드디어 찾다

뜨리또뜨는 매일 우리에게 찾아와서 외부 소식을 알려주었다. 하루는 이민국에 찾아와서 좋은 소식을 전해주었다.

“당신 아들이 있는 곳을 알아냈소.”
“네? 우리 아들이…어디에 있답니까?”

“북한 대사관 앞에서 아이들이 밖으로 나올 때, 내가 어느 한 아이에게 물어보았는데, 그 아이가 뒤를 돌아보며 대사관 2층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소.”
“아, 대사관에…처음 체포될 때도 대사관 2층에 감금되었는데, 다시 그 곳에 갇혀있는 모양이군요.”
“라오스로 넘어가지 않고 아직 태국 땅에 있다는 뜻이지요.”
“뜨리또뜨 부국장님, 북한 대사관에 감금된 아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될 지도 모릅니다. 북한 보위부 요원들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종자들입니다. 대사관 영내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잘 감시해주세요. 그리고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속히 부모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태국 정부에서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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