姜孝祥

“미국은 북한을 침공할 의사가 없다”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한 메시지에 대해 정부 당국자들은 고무된 분위기다. 외교부 장관은 TV에 나와 “한·미가 이번에 대화로써 북한문제를 해결하기로 한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흡족해 했다. 미국 성조기(星條旗)를 불태우던 반미시위단체들도 “다행스럽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면 이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끝난 것인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서울에서 공언한 대로 북한에 대한 미국의 인식에는 변함이 없다. 그리고 언제 미국이 북한을 무력침공하겠다고 한 적이 있는가. 격렬히 반미시위를 벌이다가 ‘전쟁이 없다’는 말 한마디에 싱겁게 식어버리는 한국인들만 모양이 우습게 된 꼴이다.

돌이켜 보면,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우리가 그렇게 흥분할 일이 아니었다. 설사 부시 대통령의 표현이 다소 지나쳤다고 하더라도 이를 전쟁광(狂)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이성적인 태도가 아니었다. 미국 전문가들이 누누이 밝힌 대로 부시 행정부는 전임 클린턴 행정부와 스타일 면에서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화당입니다(We are republicans).”
부시 행정부 취임 이후 서울을 찾는 미 행정부 인사들이 자주 강조하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현재의 미행정부는 더이상 민주당 행정부가 아니라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이 세상 바뀐 것을 모르고 있다는 타박인 셈이다.

미국 공화당의 외교노선과 철학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정부가 과거와 달리 북한에 대해 왜 그토록 강경한지 의아해 하는 것은 우리가 현 미국정부를, 아니 미국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공화당을 너무 모르는 데서 비롯된 오해가 많다.

이미 2년 전인 2000년 7월 펜실베이니아에서 발표된 미 공화당의 정강(政綱) 중 외교분야를 한번 보자. 공화당은 “현 행정부(클린턴 행정부)의 허약한 지도력으로 미국의 정보수집 능력이 쇠퇴되어 이라크의 생화학무기 개발계획 및 인도의 핵실험, 북한의 3단계 탄도미사일 실험 등 놀라운 결과가 초래되었다”고 지적했다. 레이건-부시 공화당 행정부가 지켜온 세계의 안전(安全)이 클린턴 정부의 유약한 정책 때문에 도전받고 있다는 결론이다.

“한국은 미국의 귀중한 민주주의 동맹국이다. 미국인들은 한국전쟁에서 북한의 군사공격을 중단시키기 위해 피를 흘렸다. 미국인들은 과거의 희생을 존경하며, 오늘날에도 공격을 격퇴할 준비가 되어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할 것은 미국의 단호한 의지이다. 미국은 자신의 의무를 지킬 것이며, 대량파괴무기를 사용하는 적의 공격을 단념시키고 적의 공격으로부터 자신 및 동맹국을 방어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다할 것이다.”

공화당은 대(對)아시아 정책에서 북한에 대해 이처럼 단호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선 ‘힘의 우위’를 통한 외교정책이 가장 효과적이란 점을 공약(公約)한 후, 대통령 선거에서 이겨 미국을 이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이런 강경론은 9·11 테러 이후 더욱 굳어지고 있다. 얼마 전 개막된 동계올림픽에서 테러로 찢긴 성조기를 들고 입장하는 미국인들에게서 ‘맹목적인 애국심 (Blinded Patriotism)’이 느껴질 정도다. ‘악의 축’ 발언은 이런 미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한, 미정부의 세계전략에서 나온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정부가 설득한다고 해서 쉽게 바뀌어질 성격이 아닌 것이다.

미국을 정확히 아는 것은 패배주의도 사대주의도 아니다. 국제정세를 직시하는 것은 실리적인 태도다. 그리고 정략적인 의도없이 한·미 관계를 바르게 설명할 ‘책임과 의무’는 우리 정부와 지식인들에게 있다.
/경제과학부 차장대우 hskang@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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