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

독일 통일 후 23년이 지났으나 우리가 독일 통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다. 먼저 우리는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독일 통일은 '접근을 통한 변화' 정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변해서 된 것이 아니라 동독 민주혁명으로 동독 공산 정권이 망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그리고 동독 민주혁명은 서독 사민당 지도부가 외면했던 동독 민주 인사들이 주도한 시위로 성공할 수 있었다.

둘째, 많은 사람은 기민당의 콜 총리가 사민당의 동방정책을 계승했기 때문에 통일이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콜 총리는 동독과 교류·협력을 확대하는 방침만 이어갔을 뿐 사민당 정책 기조는 계승하지 않았다. 콜 총리가 베를린 장벽 붕괴 후 사민당 요구대로 동독 탈출민의 수용을 거부하고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면 독일 통일은 훨씬 지연됐거나 불가능하게 됐을 가능성이 많다. 위기에서 벗어난 공산 잔당이 다시 세력을 얻어 통일을 방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셋째, 우리는 서독이 동독에 대규모 경제 지원을 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금품 연평균 20억달러 가운데 77.1%는 서독 주민과 교회가 동독 친척과 교회에 보낸 물품이며, 서독 정부가 동독 정부에 지불한 금품은 15.7%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돈은 우편·철도·도로 사용료 및 정치범 석방 대금 등 동독이 제공한 서비스에 대한 반대급부일 뿐 무상 지원은 한 푼도 없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지난 20년 동안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서독의 화해 협력 정책이 독일 통일의 원동력이 됐다는 믿음 때문에 역대 정권은 북한 주민은 외면한 채 북한 공산 정권 상대 화해·협력을 중시했고 그 대가는 북한의 핵 개발, 3대 세습 체제 출범, 북한 주민의 삶의 질 악화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 박근혜 대통령이 드레스덴에서 발표한 '한반도 평화통일을 위한 구상'을 보면 우리 정부가 독일 통일을 정확히 이해하기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된다.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은 과거와는 다른 몇 가지 특징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첫째, 과거 정부들과는 달리 박 대통령의 구상에서 북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대폭 낮아졌다. 대북 제안은 끝 순서로 밀려났고 김정은 정권이 반길 내용도 별로 없다. 독일 사례에 비추어 통일은 북한 공산 정권과 대화하거나 교류 협력해서 달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이산가족 상봉, 모자(母子) 패키지 사업, 민생을 위한 인프라 지원 등 인도적 문제와 북한 주민 삶의 질 개선을 중시하고 있다. 서독 역대 정권을 관통했던 내독(內獨) 정책 기조가 '인간에 대한 배려'였다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셋째, 북한 정부보다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했다. 북한과 협상·합의하지 않고도 북한 동포를 위해 우리가 할 일을 해 나가겠다는 의지 표시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정부가 독일 통일의 교훈을 올바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믿어도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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