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과 김정은의 ‘통일대전’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이애란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원장
2014년 연두기자회견을 통해 ‘통일대박’을 선포한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방문 중에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드레스덴 대북 3대 제안을 내놓았다. 드레스덴 공과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남북 주민의 인도적 문제 우선 해결 ▲남북 공동번영을 위한 민생 인프라 구축 ▲남북 주민간 동질성 회복 등 3가지 구상을 북한에 제시한 것이다. 북한은 이에 발끈해 매일같이 박대통령에 대한 비방과 중상을 늘어놓고 있다.

남과 북을 다 같이 경험한 탈북자로서, 그리고 북한주민들의 날로 비참해지는 생활과 그들의 절망을 함께 공유하는 입장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이 제안은 매우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북한 주민들에게는 엄청난 희망의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에 전쟁을 바라는 사람이 없듯이 북한에도 전쟁을 바라는 사람은 없다. 누가 핵무기를 터뜨려 다 같이 죽기를 원하겠는가? 자신이 죽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수백년이 걸려도 해소되지 않는 핵 참화의 비극이 될 것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영원히 이어지리라고 믿는 북한 주민은 아무도 없다. 특히 고위층들일수록 김정은 정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확신은 더 크다. 김정은이 박 대통령의 ‘통일 대박’에 맞서 내놓은 ‘통일대전’은 이런 북한 내 민심을 반영하고 있다.

김정은은 북한 주민들에게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는 중대 기로에 서 있다. 그 마지막 카드가 바로 무력 도발을 통한 위협과 전쟁 불사론이다. 김정은의 첫 작품이었던 화폐 개혁은 토지 개혁에 버금가는 제 2의 사회주의 개혁을 통해 김일성 우상화의 근간이 된 배급제를 부활시키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리설주라는 젊은 부인을 내세워 세계적인 유행 트렌드와 명품 패션을 선보이고 호화 사치의 극치인 스키장, 능라유원지, 물놀이장을 인기몰이 카드로 내세웠지만 배고픈 북한주민들의 눈에 그것이 들어올 리가 만무했다. 아무리 할아버지 김일성을 따라하려고 해도 김일성이 되지 못하는 데 김정은의 딜레마가 있다.

할아버지 김일성은 아버지 김정일에게 배급제로 탄탄하게 다져져 굶어 죽으면서도 충성을 맹세하는 북한 주민을 넘겨주었다. 하지만 아버지 김정일은 수백만명이 굶어죽고 수십만명이 탈북해 남한에 잘살면서 돈까지 보내주기 때문에, 북한 주민들의 눈과 귀와 입은 오로지 ‘남조선’으로 향하는 마이남풍(馬耳南風)의 나라를 남겼다. 김정일이 행운아였는지는 모르지만 김정일은 그래도 가장 어려운 시기에 남한의 훌륭한 우군 대통령을 만나 호사를 했다. ‘햇볕정책’으로 대표되는 북한 살려주기 정책이 한동안 계속되면서 김정일은 남한을 위협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훌륭한 후원자이자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빼다 쓸 수 있는 ‘조선중앙은행 서울특별지점’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김정은에게는 지금 이런 혜택이 없다.

김정은이 김일성에 버금가는 인기를 얻고 싶지만 그러기에는 혼자서 누리고 싶은 것이 너무 많고 백성들에게 나눠줄 것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특출한 지식이나 이론으로 하자니 그것도 김일성, 김정일 때 너무 많이 써먹어서 새롭게 내세울 것이 마땅찮다. 인물로만 따져도 별 볼일 없는 것이 현실이다. 국제적으로는 고모부까지 잔인하게 처형하는 패륜아로, 중국으로부터도 외면당하는 외톨이가 돼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박 대통령이 핵정상회의에 참석해 환호를 받는 것이 배가 아프고, 세계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대북 3대 제안을 발표했다고 하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남한에 있는 남북관계 맹신자들이 문제이다.

국내에서 북한학자, 통일전문가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드레스덴 선언에 5·24조치 폐기 문제와 금강산 관광 재개 방안이 포함되지 않아서 진정성이 없다는 등으로 비하하고 있다.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인지, 아니면 김정은의 변호인인지 모를 얘기를 남발하고 있는 현실이 통탄스러운 것은 탈북자여서 느끼는 비애인지 모르겠다.

드레스덴 선언은 남북한 주민이 모두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함께 잘 살고 평화로운 미래사회를 만들어가자는 제안이다. 반면, 5·24 조치와 금강산 관광 중단 문제는 대한민국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북한이 대한민국의 장병과 일반 주민을 살상하면서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치이다. 그리고 북한은 이 두 문제에 대해 지금까지 한마디의 사과도 없었고 책임에 대한 의식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은 지금도 도발행위를 계속 감행하고 있다. 이유도 명분도 없는 미사일 발사와 백령도 포격, 무인 정찰기 투입, 사이버테러와 핵실험 공언 등 대한민국을 넘어 미·일까지 위협하는 도발 행위를 일삼고 있다.

남북관계에 있어서 한가지 명백한 것이 있다. 북한 정권에 유리하고 필요한 제안은 반드시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북한당국이 나서서 핏발을 세우고 비방·중상하는 제안은 올바른 제안이다. 드레스덴 3대 대북제안은 북한 주민과 대한민국 국민이 진정한 통일을 이루기 위해 반드시 실현돼야 한다. 김정은의 통일대전은 대한민국을 멸망시켜 김정은 정권의 융성 번영을 꾀하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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