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날아온 공포의 소환장
보위부의 소환장은 ‘숙청 통보서’
막내 아들 하나라도 살리자
북에 남은 큰아들은 인질

태국 방콕주재 북한대사관에서 과학기술참사를 지내다 목숨을 걸고 탈출한 홍순경(76)씨가 13년여만에 극적인 탈출 스토리를 상세히 공개했다. 3일 출판된 그의 자서전 ‘만사일생(萬死一生)’엔 탈출 뒤 북한 보위부원들에게 다시 체포돼 3번이나 자살을 기도했던 필사의 탈출 과정이 상세히 소개돼있다.
홍씨는 책이 늦게 나온 이유에 대해 ‘2000년 한국으로 입국한 직후엔 북한정권과의 관계 악화를 꺼리는 우리 정부의 압박으로 상세한 이야기를 공개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만사일생은 홍씨가 태국 난민수용소에 있을 때 한국 망명을 권유하는 고(故) 황장엽 선생의 편지글에 나오는 표현으로, 구사일생보다 더한 험난한 탈출과정을 표현한 말이다. 홍씨의 탈출기를 5차례에 나누어 소개한다./편집자 주

평양에서 날아온 소환장

“평양에서 긴급한 암전(暗電·암호전문)이 왔으니, 어서 대사관으로 오시라요.”
1999년 2월 17일, 대사관 행정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북한의 최대 명절인 김정일 생일 다음 날이어서, 나는 압록강기술개발회사 기술자 가족들과 함께 방콕에서 제일 크다는 놀이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참이었다. 전화를 받으면서 짜증섞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전보야 내일 출근해서 보면 되는거지, 왜 오라 말라 하는거요?”
“급한 일이니, 당장 나와서 보시라요.”

더는 고집할 수 없어서, 일행들에게 이해를 구하고 대사관으로 갔다. 기다리고 있던 행정참사가 내게 전보를 건넸다. 평양의 국가보위부에서 보낸 전보였다.

“과학기술 참사 홍순경과 그 아들 및 기술자 네 명 등 6인은 2월 19일 방콕을 출발하는 조선민항기로 귀국할 것. 들어올 때 재정문건 일체를 지참할 것.”

청천벽력같은 내용이었다. 내게는 ‘감옥에 보내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이렇게 느닷없이, 더구나 국가보위부에서 날아드는 소환장은 ‘감옥행’을 뜻하는 협박장이나 다름없었다. 순간 뇌리를 스치며 6개월 전 기억이 떠올랐다.

홍순경씨(왼쪽)와 이종환 사회안전부 국장. 이 국장은 홍씨를 태국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기술 참사로 스카우트해준 은인이었다.
홍순경씨(왼쪽)와 이종환 사회안전부 국장. 이 국장은 홍씨를 태국주재 북한대사관 과학기술 참사로 스카우트해준 은인이었다.
1998년 8월, 사회안전부 이종환 안전기술국장이 체포되었다. 이 국장은 1997년 초에 북한으로 소환되려던 나를 스카우트해서 태국지사장을 맡긴, 내게는 은인이나 다름없던 인물이다. 10월 초에는 그 산하 기관인 압록강기술개발회사의 베이징지사장과 직원들 모두가 소환되어 처벌받았다. 사실을 파악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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