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鎭雨

북한을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규정한 부시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우리 사회는 지금 다시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리 사회의 안보와 평화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이 말에 국론을 결집하여 초당적으로 대처해도 시원치 않을 마당에 국회의원들은 말도 되지 않는 원색적 비난으로 정쟁이나 일삼고 있다.

한 쪽에서 ‘부시 대통령은 악의 화신,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는 악의 뿌리’라고 극언을 내뱉으면, 다른 쪽에서는 ‘DJ 정권은 김정일 정권의 홍위병’이라는 극언으로 되받아 친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가 민주화를 통해 극복했다고 믿어마지 않았던 냉전시대의 잔재인 ‘친일파’ ‘용공프락치’ ‘빨갱이’ 등의 비방이 다시 난무하는 것을 보면 부시의 말은 채 아물지 않은 우리의 역사적 상처를 다시 덧나게 한 모양이다. 부시 대통령의 방한을 계기로 벌어진 반대 시위와 환영 시위는 국내 여론의 분열구조와 이념적 갈등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동안 잊혀진 듯하던 이분법적 편가르기의 고질병이 다시 도지면서 우리 사회는 친미(親美)와 반미(反美) 사이에서 다시 우왕좌왕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냉전적 사고방식을 되살리는 사려 깊지 못한 말이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그 때문에 우리 자신이 적과 동지로 갈라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표면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대(對)테러 전쟁으로 인한 국제 정세의 변화와 이에 대한 입장 차이에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조금만 외풍이 불어도 다시 극단주의에 감염되는 허약한 체질 탓이 더 큰 것은 아닐까? 언제부터인지 우리 사회에는 적과 동지를 분명하게 구별하고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 용기있는 행위로 평가되는 극단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이 점을 상기하면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 있음이 틀림없다. 햇볕정책을 비판하는 사람은 무조건 반(反)통일 세력으로 매도되고, DJ를 지지하면 무조건 친북(親北)으로 분류되는 풍토에서 어떻게 합리적 토론이 뿌리를 내릴 수 있겠는가.

어떤 사회든 이념의 차이와 의견의 다양성을 소화할 수 있는 민주화의 뿌리가 튼튼할 때에만 외풍에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악의 축’ 발언에 자극 받아 모든 책임을 외부로 전가하는 대신 말 한마디에 내홍(內訌)을 겪는 우리 사회의 분열 구조를 냉철하게 반성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끓어오르는 감정을 자제하고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면 모든 문제는 결국 독선(獨善)으로 귀결된다. 우리 사회 남남(南南) 갈등의 촉매 역할을 한 것은 스스로를 ‘선(善)의 화신’으로 믿고 있는 것 같은 미국 대통령의 독선적 발언이고, 그것 때문에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는 편가르기의 내부적 원인도 독선적 권위주의이기 때문이다.

부시 대통령은 “세상에는 악(惡)의 무리들이 있으며, 미국의 가장 중요한 소명은 필요할 경우 그들을 쓸어버리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자신만이 선(善)하고 자기와 입장이 다른 모든 국가와 민족은 악(惡)하다는 극단적 독선주의는 대화보다는 폭력을 선호하고, 평화보다는 갈등을 부추길 뿐이다.

이러한 독선적 극단주의에 대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 사회 내부부터 그러한 경향을 극복하는 것이다. 다른 나라가 우리의 입장과 접근 방식을 인정해주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우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의견들부터 인정하고 포용해야 한다. “나는 좋은 일을 하고 있으니 너희는 나만 따르면 된다”는 식의 독선은 사회만 분열시킨다.

민주사회에서는 독선이야말로 악의 뿌리이다. DJ 정권이 이 사실을 조금만 일찍 깨닫고 비판적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더라면, 우리 사회가 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이처럼 우왕좌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 계명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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