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등 통큰 선물 없자 실망… 제재 풀지않는 美도 동시 겨냥
北중앙통신, 한밤에 원색 비난 "통일 제안, 잡동사니 긁어모아"
北, 포격 앞서 이례적 事前통보… '정면 충돌은 피하겠다' 뜻인 듯

북한이 30일 제4차 핵실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31일 서해상에서 대규모 사격훈련을 실시한 것은 북한이 나름대로 그간 한·미 양국에 대해 쌓아두었던 불만을 표출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의 이 같은 무력 시위가 실질적인 대남 군사적 도발로 이어지는 징조인지, 아니면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내 6자 회담 등 대화 국면으로 가려는 의도인지 현재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북 왜 무력시위?

북한의 잇따른 강경 조치는 최근 우리 해군의 북한 어선 나포와 현재 진행 중인 한·미 연합 독수리 연습이 그 직접적인 배경이다. 북한은 우리 해군이 지난 27일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한 북한 어선을 나포했다가 6시간 만에 송환한 것을 두고 "깡패 짓"이라고 비난했다. 북한은 31일 포격에서도 어선 나포 지점인 백령도 동북쪽 해상에 포탄을 집중했다. 한·미 양국이 31일 대규모 상륙연습을 한 것도 북한을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이 훈련이 평양 진격을 위한 상륙작전이라며 극도로 경계해왔다. 상륙작전에 대비해 해안포 사격을 집중 훈련했다는 것이다.

북한이 31일 서해 5도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실시한 해안포 사격의 도발 원점 중 하나로 추정되는 황해남도 장산곶의 해안포 진지(빨간 원). 이곳은 백령도에서 17㎞ 떨어져 있다. 작년 3월 백령도 전망대에서 촬영한 사진. /뉴스1
북한이 31일 서해 5도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실시한 해안포 사격의 도발 원점 중 하나로 추정되는 황해남도 장산곶의 해안포 진지(빨간 원). 이곳은 백령도에서 17㎞ 떨어져 있다. 작년 3월 백령도 전망대에서 촬영한 사진. /뉴스1
하지만 북한의 최근 도발은 이런 것들만 원인이라고 하기에는 그 수위가 높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에 대한 실망감의 표출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의 제안이 금강산 관광 재개나 대규모 경협 등 자신들이 원하는 바에 못 미쳤다고 판단, 더 많은 것을 얻어내기 위해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밤 올린 '남조선 집권자의 저급한 외교'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박 대통령이 독일 행각 때 '동족 간의 비방중상 중지'를 떠들던 그 입으로 우리를 악랄하게 헐뜯으며 횡설수설했다"며 "잡동사니들을 이것저것 긁어모아 '통일 제안'이랍시고 내들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박 대통령의 3대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중앙통신은 이날 '사람 웃기는 일을 언제까지 할 셈인가'라는 기사에서도 '평양 시민'등을 인용해 박 대통령의 3대 제안을 "만 사람을 웃기는 일"이라고 하는 등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북한의 최근 도발과 주요 정치 일정표
북한의 최근 도발과 주요 정치 일정표

북한의 무력시위는 근본적으로는 6자 회담이나 북·미 직접 대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올해로 집권 4년차에 접어든 김정은으로서는 체제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려면 미국 등 국제사회로부터 대화를 통해 권력의 안전을 보장받아야 한다. 북한이 30일 외무성 성명에서 미국을 집중 거론한 점에 비춰 최근의 무력시위가 한국보다는 미국을 겨냥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북한 입장에서는 김일성 생일(4월 15일)과 한·미 연합 훈련(4월 18일까지)을 거쳐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이 예정된 4월 하순까지는 자신들의 '몸값'을 높이기 위한 도발을 계속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이다. 대화에 앞서 선(先)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한·미 양국에 대해 북한이 '벼량 끝 전술'을 다시 시작했다는 분석도 있다.

◇사전 통보는 왜 했나

북한이 이날 포격에 앞서 우리 군에 훈련 사실과 예상 탄착점 등을 알리고 주의를 요구한 배경에도 관심이 쏠린다. 군 당국은 "북한이 사격훈련을 실시하면서 사전에 우리에게 전통문을 보낸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북한은 NLL을 따라 북쪽으로만 7개 사격 지점을 선정했다. 이는 NLL을 인정하는 듯한 제스처로 비쳤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한·미 훈련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사격 훈련을 하지만 더 이상의 사태 악화는 원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라고 해석했다. 북한이 도발 수위를 높이면서도 한·미와의 정면 충돌은 피하고 싶어한다는 것이다. 유엔 안보리가 노동미사일 발사를 규탄하는 성명을 낸 지 3일 만에 또 실탄 사격을 하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수 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는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처럼 언제든 실질적 군사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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