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자유아시아방송 란코프 ∙ 한국 국민대 교수

지난 3월 9일, 북한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가 진행됐습니다. 북한은 이번 선거에 참가율이 99.97% 찬성률은 100%라고 주장했습니다. 탈북하거나 장사하러 나간 사람들이 있어서 투표 참가율은 이보다 낮을 수 있지만 찬성률은 믿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당국자들이 임명한, 하나밖에 없는 후보자에게 반대표를 던지는 건 사실상 별 의미가 없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 선출된 의원들은 얼마 뒤 평양에서 만나 당 중앙과 정부에서 내려 보낸 모든 법안을 자동으로 통과시킬 겁니다. 그들은 도장 찍는 기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법안 내용을 알 필요도 없고 정치에 대해 아무것도 알 필요 없이 그냥 손만 들 줄 알면 됩니다.

물론 그들 가운데 머리도 좋고 마음이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 사람들도 북한 정치에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북한의 국회로 볼 수 있는 최고인민회의는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없는 국회이며 최고인민회의 선거는 정치극에 불과하다는 것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그렇지만 북한 정권은 이런 의미 없는 선거를 70년 동안 4, 5년마다 꼬박꼬박 실시해왔습니다.

북한은 이런 선거 방법을 스탈린 시대의 소련에게서 배웠습니다. 스탈린 시대, 독재 국가였던 소련도 정기적으로 이런 선거를 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도, 옛 소련도 왜 이와 같은 선거를 해야만 했을까요?

기본적인 이유는 지배계층의 모순 때문입니다. 북한은 절대군주제를 실시하는 왕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씨 일가가 40년대 말부터 대를 이어 권력을 장악하고 고급 간부직도 압도적으로 김일성, 김정일 시대 간부들의 자식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이유는 지금 북한의 모습이 그들이 주장하는 사상과 완전히 다르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공식적인 자료를 보면 출신성분을 중심으로 하는 간부관리 체계에 대한 언급도 없고 김 씨 일가가 아니면 최고 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얘기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국가를 ‘공화국’이라고 주장하는데 공화국으로 위장하기 위해선 이런 선거가 필요한 겁니다.

또 선거는 북한 인민들이 정부를 전적으로 지지하고 있고 정부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정책을 결정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배계층도, 인민들도 이게 근거가 없는 주장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정한다면 북한 국가의 사상 기반이 흔들리기 시작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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