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부시 행정부가 22일 북한이 외무성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의 대화 제의를 거절한 데 대해 거듭 북한에 대화를 촉구한 것은 다목적 포석이다.

우선 미·북 간 교착 상태의 책임을 계속해서 북한에 돌리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리처드 바우처(Boucher) 대변인은 이날 북한이 미국과 한국의 대화 제의에 호응하지 않고 있는 사실을 “개탄스럽다(regrettable)”고 표현했다.

정례 브리핑에서 사용된 용어치고는 상당히 강도높은 어투이다. 부시 행정부가 거듭 강조해왔듯이 공은 북한에 있는데, 북한이 그 공을 받아 넘기지 않고 있다는 점을 다시 강조한 대목이다.

부시 행정부는 또, 이번 북한 담화가 부시를 ‘정치적 미숙아’로 몰아붙이는 등 호전적인 용어를 포함하고 있지만, 담화만으로 북한의 대응을 예단하지는 않겠다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명분과 체면을 중시하는 북한은 과거 겉으로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면서도 실제로는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보인 적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국은 북한이 하는 행동을 좀 더 두고 보겠다는 태도인 셈이다. 바우처 대변인은 ‘북한이 어떤 말을 하더라도 대화 제의를 견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변했다.

다만, 콜린 파월(Powell) 국무장관이 이날 대북 대화 창구로 뉴욕 채널을 언급한 것은, 북한과의 대화 통로로 뉴욕 채널을 활용하긴 하지만 아직은 그것 외에 별도의 대화 채널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에 북한과의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 특별대책을 강구하고 있지는 않음을 보여준다.

미·북 간 뉴욕 채널은 그동안 양국 간 실무를 다루기 위해 간헐적으로 열렸으나, 양국 간 현안에 대한 논의에는 전혀 접근하지 못한 채 맴돌았다.

실제로 북한이 미국의 잇단 경고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시험발사 재개와 수출 등 ‘도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한 미국은 상당기간 북한을 ‘무시’하는 정책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부시가 ‘악(惡)의 축’으로 지목한 3개국 중 이라크에 대한 공격 논의가 구체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만큼 또 다른 전선(戰線)을 만드는 것은 국제사회 여론 등을 감안할 때 바람직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이번 외무성 담화는 북한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불신감을 더욱 굳히는 데 일조(一助)했을 가능성이 크다. 북한 외무성이 부시의 ‘우리 최고 수뇌부와 우리 제도에 대한 체질적인 거부감’을 지적했듯이, 부시 대통령은 작년 3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에 대한 ‘회의(skepticism)’를 처음 표현한 이후 뿌리깊은 불신을 키워왔다.

부시 행정부는 앞으로 북한에 대해 다단계 압박 작전을 구사하면서 핵과 제네바 협정, 미사일 개발과 수출, 재래식 군사력 문제 등 현안에 대해 북한의 사실상 ‘양보’를 요구하는 전략을 밀고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朱庸中특파원 midwa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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