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오는 24~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때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 한다. 정부는 19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한·일 양자 정상회담은 시기상조지만 3국 회담에는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결론지었다 한다. 정부 관계자는 "3국 정상이 사진을 함께 찍고 대화를 나누는 정도가 될 것 같다"고 했다. 아베 신조 총리도 18일 일본 의회에서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 간) 미래 지향적 관계 구축을 위해 진력하겠다"고 말했다.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국 대통령의 임기 첫해에 한·일 정상회담이 열리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왜 이렇게 됐는지는 아베 총리 자신이 가장 잘 알 것이다. 아베 총리는 집권 이후 한·일 관계를 파탄 내기로 작정이나 한 사람처럼 반(反)역사적 언행을 거듭해왔다. 전쟁 범죄를 부인하는 듯한 말을 하더니 급기야 작년 12월 A급 전범이 합사(合祀)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감행했다. 1월에는 중·고교 학생들에게 독도를 일본 영토로 가르치도록 했고, 2월에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河野) 담화'를 재검증하겠다고까지 했다. 우리로선 한 가지도 묵과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3국 정상 간 회담이라도 성사된다는 것은 악화되기만 하던 한·일 관계가 마침내 방향을 틀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북한 정세가 불투명한 가운데 4차 핵실험을 경고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는 지금 한·미·일 공조 복원을 더 이상 미룰 수만은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한·일 양쪽의 여론조사에서 관계 회복을 원하는 목소리가 50%를 넘고 있다. 한·일 어느 쪽에도 득이 될 수 없는 지금의 교착 상태는 깨야 한다.

그러나 불안한 느낌만은 지울 수 없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 사람들은 과연 과거사를 부정하는 발언을 거둘 것인가. 더 이상 야스쿠니를 참배하지 않을 것인가. 더 이상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격을 유린하는 발언을 하지 않을 것인가.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현실은 바뀐 게 없다. 일본이 정상들 회동 분위기를 만들려고 연기한 교과서 검정 결과 발표도 머지않아 공표될 것이다. 일본과 아베가 이번 회동을 과거사 부정의 면죄부로 오판(誤判)한다면 한·일 관계는 3국 정상회담 이전보다 오히려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과거사 문제에서 한·중이 연대해 일본을 비판하는 듯한 구도가 형성됐던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우리가 일본과 만나는 것은 동북아 3국 간의 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낳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한·미·일 복원을 위해 노력하되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우리의 외교 원칙은 확고하다는 사실을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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