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남한, 北 지원·협력할 나라" - 자유·풍요로움에 매우 만족
대통령 욕해도 안 잡아가더라… 공산주의보다 낫다고 생각

'2등 국민' 될까 두려움 - 北 엘리트 출신은 잘살지만
보통 탈북자는 가난 대물림… 남한 사람 배타적이라 서러워

남한에서 살고 있는 탈북자들은 한국 사회에 대해 '북에 있는 가족을 데려와 살고 싶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지만 지나친 경쟁과 경제·사회적 차별을 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에서 상당한 적응 기간을 거쳤음에도 북한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남한 사회에 대해 이질적·이중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한 출신 주민들의 남한 체제 부적응 및 차별 문제는 통일 전후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탈북자 71% '남한 생활 만족'

본지의 지난 1월 말 탈북자 200명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1.5%는 '현재 남한 생활에 만족한다'고 했다. '보통이다'는 22.5%, '별로 만족하지 않는다'는 4.5%에 그쳤다. 응답자의 91%는 '남한 주민들이 친근하게 느껴진다'고 했고, 63%는 '나는 이제 남한 사람'이라고 했다. 스스로 '북한 사람'이라고 한 사람은 25%, '남한도 북한 사람도 아니다'는 10%였다.

김성희·성원준·임춘화(왼쪽부터)씨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꿈을 키워가는 탈북 청년들이다. 임춘화씨는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김성희씨는 결혼 후 아기의 재롱에 푹 빠져 있다. 성원준씨는 인터넷 쇼핑 사업을 하면서 기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탈북자들은 저소득과 사회적 차별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이태경 기자
김성희·성원준·임춘화(왼쪽부터)씨는 대한민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꿈을 키워가는 탈북 청년들이다. 임춘화씨는 사회복지사를 꿈꾸고 김성희씨는 결혼 후 아기의 재롱에 푹 빠져 있다. 성원준씨는 인터넷 쇼핑 사업을 하면서 기자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러나 상당수 탈북자들은 저소득과 사회적 차별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 /이태경 기자
'북에 가족이 있다면 남으로 데려오고 싶은가'는 질문에 긍정적 응답은 '남한이 살기 좋으므로 적극적으로 데려올 것'(51%)과 '기회가 된다면 데려올 것'(42.5%)을 합쳐 93.5%에 달했다. '남한에 대한 이미지가 남에 온 이후 더 좋아졌다'는 응답(82%)도 '나빠졌다'(5.5%)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탈북자들 상당수가 남한 생활에 만족하면서 비교적 적응을 잘해 나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 거주 시 남한을 '협력의 대상(49.5%) 또는 북에 도움을 줄 나라(27.5%)'라고 생각했다는 사람이 모두 77%였다.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의 자유와 풍요를 제일 만족스러운 요소로 꼽았다. 평안남도 덕천 출신의 김희재씨는 "북한에선 하루 20시간 탄광 일을 해도 먹고살기 힘들었지만 남한에선 일한 만큼 벌고 저축도 할 수 있다"고 했다. 평양 출신인 김영화씨는 "평양서 신의주 가는데 7번 검문당했는데 여기선 보안원(경찰) 걱정 없이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 군관 출신인 이철씨는 "남한은 서로 물고 뜯는 사회인 줄로만 알았는데 국가가 무상으로 쌀과 연탄도 주는 것을 보고 '공산주의보다 낫다'고 생각했다"며 "대통령 욕하고 시위해도 잡혀가지 않아 좋다"고 했다. 탈북 대학생 조경일씨는 "처음엔 남한 사회가 생소했지만 이젠 완전히 적응했다"며 "북한 젊은이도 몇년이면 남한 경제·사회 체제에 적응할 것"이라고 했다.

◇63.5%는 월급 100만원 이하

그러나 탈북자들은 경제적 빈곤과 사회적 차별로 인해 상당한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탈북자 조사에서 최저임금 수준인 월 100만원 이상을 번다는 응답자는 전체의 26.5%에 불과했다. 소득이 없는 사람이 45%, 월 100만원 이하가 18.5%였다. 근로자 월평균 임금(2012년 299만여원) 수준인 월 300만원 이상 소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정규직 근로자는 전체의 27%에 그쳤고 비경제활동인구나 실업자가 46.5%였다. 월 20일 이상 일하는 사람은 25%, 하루 근로시간이 8시간 이상인 사람은 27%였다.

 
 
탈북자들의 상당수는 "북한 출신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하고, 통일 후 '2등 국민'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며 "이것이 통합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남포 출신의 김성철씨는 "탈북자 차별과 계층화가 심해 중상층으로 신분 상승이 사실상 어렵다"며 "탈북자들 간에도 부(富)와 가난의 대물림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했다. 북한에서 엘리트층이었거나 교육을 받은 사람은 남한서도 잘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적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함경북도 회령에서 탈북한 정광성씨는 "남한이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보니 살기도 적응하기도 어렵다"며 "'개천에서 용 난다'거나 '주류 사회에 들어간다'는 말은 탈북자들에겐 어림없는 일"이라고 했다. 함흥 출신의 박충권씨는 "남한 사람들이 배타적이라 자기들에게 맞지 않는 사람은 '왕따'시키려 한다"고 했고, 김희재씨는 "아파트 경비를 서는데 탈북자라고 하면 동네 주민들이 낯색부터 바꾼다"며 "편견이 심해 서럽다"고 했다. 탈북 대학생인 성원준씨는 "자살자가 많은 데 놀랐다. 개인주의가 심해 인간적 정이 없고 야박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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