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網際 정치' 주장하는 김상배 교수
"힘의 논리 통하던 시대는 끝나… 통일도 美·中 외교뿐만 아니라 동남아·유럽까지 관계망 넓혀야"

"한국 같은 중견국은 강대국처럼 힘에 의한 국제정치보다는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외교 전략을 짜야 한다."

중견 국제정치학자인 김상배(49)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1일 인터뷰에서 "근대국가의 국제정치는 군사·경제적인 힘을 바탕으로 했지만 21세기 국제정치에서는 복합적인 네트워크를 짜는 '망제(網際)정치'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면서 "한국은 세계 10위권 국가지만 동아시아에서는 가장 힘이 약한 나라이기 때문에 군사·경제력으로 경쟁하는 부국강병 게임보다는 다양한 네트워크를 구성해 강대국에 대응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역할은 크지 않지만 비슷한 규모의 동류 국가와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동진 객원기자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강대국 사이에 낀 약소국의 역할은 크지 않지만 비슷한 규모의 동류 국가와 유연한 네트워크를 통해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동진 객원기자
김 교수는 최근 네트워크 국제정치 전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아라크네의 국제정치학'(한울)을 펴냈다. 아라크네는 직물을 짜는 솜씨가 뛰어난 그리스신화 속 여인이다. 김 교수는 "네트워크 국제정치인 망제정치를 상징하는 은유로 아라크네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강대국도 이제는 군사력 같은 힘만을 사용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강대국도 국익 확대를 위해 네트워크 확대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그런 점에서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이라는 한반도 주변 '4강(强)'은 '4망(網)'으로 부르는 게 더 적절하다고 했다.

김 교수는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도 망제정치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편적 인권 문제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여러 나라 정부·시민단체 등과 함께 네트워크를 구성해 지지를 넓혀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국의 이익만을 챙기는 '실리외교'로는 한계가 있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상호 이익이라는 믿음을 주는 '신뢰외교', 인류 공동체의 보편 도덕에 호소하는 '규범외교'를 함께 해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한반도 통일 역시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 속에서 풀어야 하는 네트워크 차원의 과제다. 통일은 70년 가까이 남북으로 나뉘어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는 근대 국민국가 건설의 완성이지만, 이를 이루는 과정은 탈(脫)근대 방식의 네트워크 강화를 통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꿀벌형' 네트워크를 제안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네트워크를 짜는 '거미형'이 아니라 서로 협력해 집을 짓는 '꿀벌형'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중국과 친하게 지내는 단선 관계만으로 통일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면서 "중요한 네트워크는 더 튼튼히 하면서도 동남아·유럽 등으로 시야를 넓혀 가능한 한 많은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리스신화에서 아라크네는 직물의 여신이자 전쟁의 신인 아테나에게 도전해 솜씨를 뽐내는 대결을 벌였다가 거미가 되는 벌을 받는다. 국제정치란 결국 힘의 논리에 지배되는 게 아닐까. 김 교수는 "아라크네가 벌을 받은 이유는 직물을 짜는 솜씨가 뛰어난 때문이 아니라 신을 모독하는 내용의 수(繡)를 놓았다는 것이었다. 아라크네가 겸손까지 갖췄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며 "중견국인 한국의 외교는 아테나로 상징되는 군사·경제력 기반의 국제정치 질서를 고려하면서 아라크네의 네트워크 짜기라는 복합적 마인드를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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