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위급 접촉 대표단' 대변인 내세워 고위급 접촉 재개 속내 다시 내비쳐
정부 "일일이 대응할 가치도 없다" 대화 냉각 한동안 이어질 듯

남북이 지난달 고위급 접촉에서의 상호 비방중상 중단 합의의 이행을 놓고 12일 날선 공방을 벌이며 이 문제가 향후 남북 대화 국면에서의 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고위급 접촉 대표단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측이 정부 당국자의 발언과 언론 보도, 시민단체들의 대북 전단 살포 등의 방식을 통해 상호 비방중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며 비난을 가했다.

이같은 북한의 입장은 상호 비방중상과 관련해 북한이 밝혀 온 그간의 태도와 다르지 않다.

북한은 그간 지속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외교안보 부처 장관들의 대북 관련 발언을 문제삼으며 이같은 발언이 자신들에 대한 '도발'이라고 규정해왔다.

이날 북한이 문제를 삼은 것도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5일 헌정회 주최 강연에서 "당당한 태도로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속된말로 '국물도 없다', 약속을 지켜라는 태도로 북한을 설득했다"고 발언한 부분이었다.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관련 언론 보도의 특정 부분을 문제삼았고, 다시 한번 민간단체의 전단 살포를 비난했다.

특히 이번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집권자의 못된 발언은 더 외울 지경이 못 된다, "정수리에 부은 더러운 구정물이 발뒤꿈치까지 내려간다는 말이 있다"며 박 대통령을 겨냥한 비난도 가했다. 북측이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기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당초 남북이 세부 조항 없이 단순히 '상호 비방중상을 중단한다'고 한 합의 자체가 애초부터 논쟁의 불씨를 안고 있었다는 지적을 제기하기도 한다.

북한이 그간 지속적으로 우리측 언론과 시민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 등이 비방중상에 해당된다는 우리측과 상반되는 입장을 보여왔음에도 지난 고위급 접촉에서 이에 대한 부분을 명시화 하지 못한 것이 우리측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밖에 없다는 우려에서다.

고위급 접촉 당시 우리측 수석대표를 맡았던 김규현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은 접촉 직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언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 우리 사회의 기초이고, 북측이 이해를 해야한다고 설명했다"며 "정부가 소위 '통제'를 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끊임없이 이야기했다"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향후에도 비방중상 중단과 관련된 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남북은 또 서로를 걸고 넘어지며 공방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한 대북 전문가는 "온전한 합의가 되려면 먼저 '비방중상'이 무엇인지 공통된 정의를 내렸어야 한다"며 "지금 상황에서는 이러한 합의는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으론 이날 북한이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등 대남 기구가 아닌 '고위급 접촉 대표단 대변인'이라는 실체가 없는 존재를 내세운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어 주목된다.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및 근본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적십자 실무접촉을 논의 채널의 급을 들어 거부한 북한이 다시금 고위급 접촉 재개의 속내를 내비친 것이라는 분석이다.

다수의 대북 전문가들은 그간 북한이 적십자 실무접촉을 거부한 것은 이산가족 문제를 다른 남북 현안과 연계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라는 분석을 내놨었다.

인도적 문제만을 논의하는 실무급 채널로는 다른 현안에 대한 논의가 불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남북 현안에 대한 포괄적 논의가 가능한 고위급 접촉을 선호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은 이날 담화에서도 지난 고위급 접촉에서의 합의가 '최고수뇌부의 특명'으로 진행됐음을 강조하며 양측의 합의 이행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도 했다.

일각에선 최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마친 북한이 제13기 첫 최고인민회의 개최를 통해 내각 구성을 마칠때까진 한동안 이같은 기조를 이어가며 고위급 접촉의 재개를 압박해 올 것이라는 관측을 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부 역시 북한의 이같은 입장에 대해 "일일이 대꾸할 가치도 없다"며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어 양측의 대화가 재개되기까지 조금 시간이 걸릴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수진 통일부 부대변인은 이날 이산가족 문제 논의를 위한 추가 접촉 제의여부에 관해 "이미 우리측이 2번이나 먼저 실무접촉을 제의했다"며 "현재로서는 추가로 접촉을 제의할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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