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에 한 교수님의 출판기념회를 위해 경상북도 영주를 다녀왔습니다. 3시간이 걸려 우리가 탄 버스는 영주 시내에 들어섰습니다. 영주 시가지를 둘러보니 예전에 강연을 위해 영주를 다녀온 적 있는 저에게는 그리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작은 체구에 인상 좋은 교수님은 연단 위에서 많은 군중들에게 큰절을 했습니다. 그는 ‘가짜 민족주의 진짜 민족주의’라는 자신의 책과 관련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북한 김정은이 자기 고모부인 장성택을 만인이 보는 앞에 끌어내어 잔혹한 방법으로 공개 처형한 것은 그 잔혹함 정도가 바로 지난날 독일 나치의 히틀러와 조선의 연산군을 훨씬 뛰어 넘는 짓이고, 이런 테러 집단이 바로 우리 머리 위에 핵무기를 들이대고 있다고 말입니다.

진짜 민족주의가 무엇인가에 대해 하는 교수님의 그 말이 순간 제 가슴에 확 와 닿았습니다. 이번 장성택 처형으로 인해 이곳 남한 국민들에게 커다란 파문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해 봅니다.

북한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고 또 그전에는 북한에 대해서 잘 몰랐던 사람들 속에서도 북한 인권문제가 하루라도 빨리 통과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김일성, 김정일 세습을 이어 가고 있는 김정은 정권은 민족주의를 앞세워 통일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인간다운 삶은커녕 주민들의 경제생활과 정신세계까지도 조종하면서 고통을 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문제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한당국은 굶주림에 허덕이는 많은 주민들에게 관심은 두지 않고 정권 유지를 위해 오직 전쟁 준비에만 수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부르짖으며 뒤에서는 서해 NLL을 북한 경비정이 침범했고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만나 잠깐이나마 서로 가슴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는 시간에도 로켓 4발을 발사함으로써 우리 국민들의 민심을 어지럽히고 국제 정세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진정 인민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을 안다면 이렇게 자주 전쟁 도발을 할 수 있을까, 김정은이 진정 주민들의 배고픔을 안다면 홀로 그토록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진정으로 본래의 민족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를 원한다면 지금처럼 주민들을 전쟁의 공포로 몰아갈 수는 없다고 생각해봅니다.

북한 당국은 비록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전 세계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을 봐야합니다.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전쟁준비 대신 주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합니다. 지금도 북한 주민들은 인간다운 삶과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너 탈북을 해 제 3국에서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출판 기념회에서 제 옆에 앉았던 한 친구는 북한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눈물이 글썽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저는 어디 아픈가 물었습니다. 그 친구는 한숨을 크게 쉬고는 지난 가슴 아픈 얘기를 합니다. 고향이 청진인 그는 자신이 어린 아들을 죽인 죄인이라고 다짜고짜 말합니다. 2살짜리 아들이 빈 젖꼭지를 문 채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입니다.

저는 밑도 끝도 없이 얘기하는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는 한국에 온지 5년이 됐다고 합니다. 배고픔으로 인해 정신없이 우는 아들에게 나오지 않는 빈 젖을 물린 채 본인도 그만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옆집에 살고 있는 아주머니가 찾아와 입에 넣어주는 한모금의 물에 정신이 들어보니 아들이 숨져 있었다고 얘기하는데 그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 있었습니다. 저는 서울로 올라오는 내내 그에게 위로해 줄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그저 그의 손만 잡아주면서 이런 비극적인 사연은 북한에서 온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다 있으니 아들을 위해 악착같이 잘 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만의 가슴 아픈 사연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탈북자 모두의 가슴 아픈 사연이고 지금도 북한 주민들 속에서 겪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제는 이런 비극이 다시는 생기지 말아야 합니다. 저는 우연히 출판기념회를 통해 자유 민주주의 나라에서 살고 있는 영광과 함께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이 언론의 자유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북한 주민들도 하루빨리 우리와 같은 새 삶을 살게 될 그날, 본인의 생각과 마음을 자유롭고 편안하게 표현하며 살게 될 그날을 기대해보면서 서울에서 김춘애였습니다.

/출처 - 자유아시아방송 탈북자 김춘애 < 서울생각 평양생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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