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 현안 논의 공세 가능성
정부, '고위급' 카드 만지작...대응 수준 놓고 고심

북한이 6일 우리 정부가 제의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거부하고 나선데에는 적십자 실무접촉 보다는 '고위급 접촉'의 재개를 원하는 북한의 속내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와 다른 남북현안을 연계시켜 나가겠다는 기조를 재차 강조한 것으로도 보인다.

북한은 이날 우리측의 실무접촉 제의를 거부하는 통지문에서도 "지금은 이산가족 문제를 협의하기 위한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을 가질 환경과 분위기가 조성돼 있지 못하다"고 밝혔다.

북한이 밝힌 '환경과 분위기'는 현재 진행 중인 '키 리졸브' 등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의미했다는 것이 대다수 대북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지난해부터 우리측의 군사훈련을 이유로 들어 상봉을 무산시키거나 상봉 관련 논의 개최를 거부해 온 바 있는만큼 이번에도 이같은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방침인 것이다.

지난달 24일부터 진행되온 '키 리졸브' 훈련을 이날부로 마친 한미 양국은 곧바로 4월까지 진행되는 실기동훈련인 '독수리 훈련'에 돌입하게 된다.

그러나 북한은 이날 대화 자체를 거부하기 보다는 일종의 '조건부'로 대화 가능성을 열어두는 모습을 보이며 대화의 '급'에 대한 나름의 입장을 제시했다.

북한은 통지문에서 "현 남북관계로 보아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와 같은 중대한 인도적 문제들은 남북 적십자간 협의로 해결될 성격의 문제가 아니다"고 언급했다.

비록 구체적인 방법론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이같은 북한의 입장은 북한이 사실상 지난달 12일과 14일 진행했던 '고위급 접촉'의 재개를 원하는 속내를 비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 역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산가족 문제의 협의 자체를 거부한 것은 아니고 협의의 틀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고 언급했다.

북한은 지난달 먼저 우리측에 '청와대 인사'를 요구하며 지난 7년여간 멈춘 고위급 대화 채널의 복구를 적극 요청해온 바 있다.

양측의 합의가 이뤄진 뒤에도 북측은 뒤늦게 자신들의 대표단을 '국방위원회 대표단'이라고 명시하며 고위급 채널을 사실상 양측간 협상의 '최종 창구'로 각인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특히 북한이 고위급 접촉을 선호하는 데에는 지난해부터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여타 남북현안과 연계시켜 온 북한의 태도에도 그 배경이 있다. 적십자 실무접촉만으로서는 남북간 다른 현안을 엮어서 상봉 문제를 논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같은 북한의 의도를 염두에 둔 듯 전날 북측에 적십자 접촉을 제의하면서도 "이산상봉 문제는 인도적 사안이기 때문에 적십자 채널에서 협의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판단"이라며 "중요한 것은 회담대표들의 격이나 급 보다는 실질적으로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고위급 접촉에서 이산가족 문제와 한미합동군사훈련을 연계해 결국 우리측의 의도와 달리 정치적 논의를 거쳐 상봉 행사를 재개하는데 성공했다.

따라서 '운신의 폭'이 좁은 적십자 실무접촉 보다는 고위급 접촉을 통해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다른 남북 현안과 엮어서 이산가족 상봉 문제를 논의하려는 시도를 보인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이산가족 상봉을 자신들의 '통 큰 용단'으로 선전해온 만큼 앞으로 다른 남북 현안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카드를 공격적으로 제시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지난 고위급 접촉에서 '남측을 믿고 한번 해보겠다'고 '통크게' 나온 만큼 이제 본격적으로 금강산 관광 재개, 5·24조치 해제 등 원하는 의제를 공격적으로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으로서는 이산가족 상봉 문제 보다는 다른 남북 현안을 주 의제로 다루고 싶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는 사실상 북한의 의도를 이같이 정리하고 통일부를 중심으로 유관부처 간 논의를 통해 대응 방향을 논의 중에 있다.

특히 양측이 이산가족 상봉이 끝난 후 한차례 더 고위급 접촉을 열기로 합의했던 만큼 정부도 고위급 접촉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고심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부 안팎에서는 북한의 의도대로 고위급 접촉이 재개될 경우 향후 오히려 우리측의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남북간 모든 현안이 주무부처 및 실무급 간 논의 과정 없이 고위급 접촉을 통해 일괄타결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향후 고위급 접촉이 어그러질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정부가 '순수 인도적 사안'으로 강조해 온 이산가족 상봉 관련 논의가 지난달에 이어 또다시 고위급 접촉을 통해 논의될 경우 다른 현안과 맞물려 자칫 이산가족 문제가 양측의 정치적 협상의 부수 의제 정도로 변질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되는 점도 정부로서는 부담스러운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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